최윤겸 감독의 경질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부천서포터들이 그 내막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윤겸 감독은 대전을 맡은 뒤 부천만 만나면 유독 이를 갈았다.(그런 느낌의 경기운영이었다) 부천 내에서도 그가 대전의 감독이지만 존경의 맘을 숨기지 않았다. 최근 대전 내에서 이상한 일들을 벌이며 경질됐지만 - 코치를 때렸다는 것인데 그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듣던 나로선 그 사건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쨌든 선수들이나 주무나 트레이너들은 최윤겸 감독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인간성과 카리스마, 그에 따른 선수 장악력. 니포축구에 대한 승계까지.
그런 그가 좋지못한 구단의 논리로 대전으로 쫓겨났고 그 과정에서 선수단과 코칭스텝이 구단에 반기를 들었던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구단이 일부 코칭스텝을 설득한 것이다. 설득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결론적으로 그들은 최윤겸 감독의 경질에 눈을 감는 꼴이 되버렸고, 그렇게 부천에 남았다.
선수들은 그런 그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최정민이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감독이 그렇게 내쳐지는데 지들은 자기살길만 챙겼어. 적어도 그건 잘못된 거야. 그래놓고 이제와서 열심히 뛰자라고 얘기하면 그게 선수들에게 먹히냐?”
결국 이런 선수단의 앙금이 경기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 듯 보인다. 다 지난 얘기지만 결국 구단의 행태가 부천의 몰락을 가져온 셈이다.
어쨌든 하재훈 감독대행체재로 돌아선 부천은 선수단의 일대 혁신을 맞게 된다. 혁신이란 말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뉴페이스들이 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장비관리사였던 나로선 이때가 가장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유니폼과 장비들을 선수마다 챙겨줘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절기 유니폼과 새로운 연습복이 지급이돼 업무가 힘에 부칠 정도였다.
이즈음부터 약2개월간 선수단에는 변화가 있었다. 경고누적으로 출장할 수 없었던 수비수 최거룩이 2경기 연속 퇴장을 당한 것이다. 불필요한 반칙때문이었는데 그것이 1골차 패배를 연이어 당하게한 한 원인이기도 했다.
그런 최거룩의 거친 플레이는 동료들에게도 반감을 샀다. 구단은 즉시 트레이드를 계획했다.
그래서 전남의 조현두와 1:1 트레이드를 감행했고 이어서 박민서, 이승엽, 오명관, 샤리, 보리스 등이 줄줄이 들어오게 된다. 샤리와 조현두만 빼면 모두 수비수인데 이 역시도 이제와서는 아쉬움이다.
부천은 아마도 ‘이기는 축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20경기 가까이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구단의 팬 - 혹은 서포터들이 원하는 것은 ‘골을 넣는 축구’였다. 지더라도 통쾌하게. 이기더라도 지저분하지 않게.
결론적으로 박민서, 이승엽, 오명관 모두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었지만 수비에 큰 보탬에 되지 못했다. 특히 오명관 선수는 수염이 더부룩한 거친 외모와는 달리 심성이 여렸다. 자신의 잔실수로 서포터들이 욕설을 해대면 그게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아 또다른 실수를 가져오는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자연히 자신감을 줄어들고 그것은 경기력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케이스다.
반면 곱상한 외모의 윤중희나 이승엽 선수는 독종이다. 경기를 나가기 위한 준비가 꽤 철저하고 경기장에서도 나름의 악바리 근성이 있다. 박민서 선수는 훌륭한 다리근육을 가지고 있다. 몸도 그만하면 K리그에서 통하는 체격을 갖췄다. 그런데 무언가 핀트가 잘 맞지 않았다. 다만 이들이 부천에 온 뒤로 한경기 4실점이나 하는 어이없는 수비는 한층 줄어들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거기에는 보리스라는 걸출한 용병 수비수도 한몫했다.
6월18일 부천종합경기장.
부천과 안양과의 경기는 꼭 다시 짚어봐야 한다. 2:4로 진 경기지만 이 경기에서 가장 빛난 이원식과 또하나의 저평가된 공격수 박성철에 대한 기억을 풀어놔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부천은 정조국, 진순진, 드라간에게 전반에만 3골을 먹었다. 이미 전반부터 패배의 기운이 드리웠다. 특이한 점은 전반 중반, 이원식을 긴급 투입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원식이 결국 후반에 일을 낸다.
이원식의 크로스를 박성철이 차넣어 1골을 만회했다. 그러나 또다시 히카르도에게 실점. 스코어는 1:4로 벌어진다. 그리고 후반 막판 이원식이 다시 1골을 만회해 결국 2:4로 끝난 그런 경기다.
이원식에 대한 단상은 부천팬이라면 누구나 머리속, 가슴속 깊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부천에게 무슨일 생기면~’ 스윽 나타나 한골정도는 너끈히 해결해주는 그는 정말로 해결사였다. 훗날 부임한 정해성 감독이 “원식이나 기일이 중 한명만 남아줘도 좋았을텐데....”하고 말한 것은 이들의 공격력이 국내 최고수준임을 나타내준다.
그러나 왠만한 부천서포터들도 이원식의 경기스타일이 굉장히 거칠고 성깔 더러운(...)모습이란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적을 듯 싶다. 그는 내가 부천에서 일한 1년동안 몇마디 나눠보지 않은 정말 조용한 성격이지만 승부근성이 남달랐으며 남들 쉬는 시간에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노력파였다.
비교적 작은 체구를 스피드와 근성으로 버텨냈으며 경기중에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경기 중 그의 눈빛을 제대로 본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살쾡이 같았다.
이날 경기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이원식의 한마디였다.
경기시작전 이원식에게 “한골 넣으세요”라고 하자 그는 씨익 웃으며 “정말 한골 넣을까?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이제와 생각인데 한 “너댓골 넣으세요”라고 했다면 그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약간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그에게는 그런 믿음이 생긴다. 결국 그는 그날 1골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또하나의 공격수 박성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아쉬움부터 앞선다.
그는 부산출신으로 걸쭉한 사투리를 내뱉고 다니는 재미있는 양반이었다. 축구계에서도 드물게 부산지역 대학 출신인 그는 190가까운 키에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타겟맨으로서 몸싸움이 약하다는 서포터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몸싸움이 약하다기보다 그에게 올려주는 크로스의 부정확성과 이미 간파당한 작전의 부재가 더 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키큰 공격수를 타겟 삼아 볼을 띄우고 그 볼을 헤딩으로 떨구면 공격수가 받아먹는 전법은 지난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비쇼베츠 감독이 우성용과 최용수, 윤정환 등을 앞세웠을때 절정을 이룬다.(적어도 내 기억에는) 이 전법은 사실 굉장히 효과적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이것만 하면 수비수 입장에선 수비하기가 훨씬 수월해 진다.
여담이지만 크로캅의 하이킥 위력은 눈으로 주는 훼이크와 수회에 걸친 로우킥, 미들킥, 펀치 등 상대선수의 주의를 분산시키는데서 온다. 타겟맨에 대한 크로스 역시 중앙돌파와 패싱게임, 좌우 측면의 돌파가 여러번 동반되야 한두번 먹힐법한 전법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박성철은 헛다리짚기가 가능한 개인기를 가지고 있었고 적어도 K리그에선 꽤 좋은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 시즌 부천이 지는 경기에만 득점을 해 서포터들의 뇌리에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박혀있진 않지만 그를 그렇게 치부하기엔 아쉬운 공격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조현두가 부천으로 올 당시 서포터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의 명성과 기록, 스타성. 물론 당시에도 초A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맨날 선수 내보내는 것만 일삼던 부천으로선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훌륭한 왼발을 가지고 있었고 또 경험이 많았다. 부천 선수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그는 옛 친정팀 수원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홈에서 치른 광주와의 0:2 패배 경기에서 부천데뷔전을 치른 조현두는 7월5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다. 그래도 꽤 괜찮았던 다보를 후보로 밀어내고. 그리고 그는 수원에게 복수한다.
전반3분만에 골을 터뜨린 것이다. 부천 서포터와 선수들은 열광했고 조현두도 조용한 성격과는 달리 수원서포터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골세러모니를 한다.
결국 서정원과 뚜따에게 골을 내줘 졌지만 조현두의 활약은 나름대로 그의 입지를 굳게 만들었다.
이름이 검을현에 콩두 자를 쓰는 것 아니냐며 당시 선수들이 즐겨먹던 검은콩우유 ‘깜유’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던 그는 그렇게 부천의 식구가 됐다.
그러나 이 경기보다 앞선 7월2일 성남 원정경기는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이원식이 정말로 서럽게 뿌린 눈물 때문이다...
4편에 계속.
- 부천 서포터 김요한 님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