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SK 시절.
장비 관리사로 활동하셨던 김요한님은
현재 소모임 아이레즈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최고 서포터 헤르메스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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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아무래도 이원식 선수에 대한 기억이 상당부분을 차지할 듯 싶다. 앞서 3편에서도 이원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에 대한 추억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서다.
특히 그가 경기중 보여준 투지는 오래도록 내 맘속에도, 또한 부천식구들의 맘속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난 부천의 모든 선수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이원식의 존재만큼은 특별했다...
내가 이원식을 처음 안 것은 역시 1996년 아틀란타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일본과의 결승전이었다. 윤정환이 프리킥 크로스를 날려주자 수비수 이상헌이 찢어진 이마로 헤딩골 작렬, 이어 조 쇼지에게 멋진(!) 오버헤드킥을 먹고 다시 동점. 이어 후반 막판 홀연히 이원식이 투입된다. 그는 패스를 받자마자 일본 페널티지역 안으로 파고들었고 그리고 파울을 얻어낸다. 최용수와 껴안으며 기쁨을 표시하던 이원식의 그 모습이 나에게는 첫 기억이 된다. 결국 최용수가 패널티킥을 차넣어 한국은 우승하게 된다.
이원식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차가웠다. 얇고 나즈막한 음성, 무표정할땐 한없이 날카로운 눈빛, 시답잖은 농담같은 것은 아예 입에도 담지않는 과묵한 성격, 아픈 부인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가정적인 남편...그것이 내가 초반에 느낀 이원식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는 나에게 불평한마디 안했으며 자신의 유니폼, 운동용품을 잃어버린다던가 하는 일도 없었다. 딱 한번 들어가본 이원식 선수의 방은 정갈했고 깨끗했다.
깨끗한 방은 이 선수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대부분의 선수들과 술잔을 기울여봤다. 아이레즈 식구들 몇명과 인하대에서 술을 먹다가 김한윤, 윤중희 선수들과 마주친 적도 있지만 경기가 끝난 후 간단한 맥주한잔 기울이는 자리에 선수들은 곧잘 나를 끼워줬다. 다만 이원식 선수와는 단 한번도 술자리를 해본적이 없다. 그가 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1년 중에 난 반년가까이를 그가 흡연자인지 모르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트레이너 선생님이 나에게 이원식 선수를 불러오라는 부탁을 받고 방문을 열었을 때 이원식 선수는 없었지만 방에는 금방 피운듯한 연기가 꽉차 있었다. 그도 흡연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내앞이나 후배 선수 앞에서 드러내놓고 담배를 즐기지는 않았다.
또다른 이원식에 대한 기억은 그가 남들이 다 쉬는 시간에 열심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던 모습이다. 실제로도 그는 꽤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물론 좋아해서 했는지, 먹고살기위해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눈에는 그가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이원식은 매우 가정적이고 소박했다. 어느날 종이로 꽃을 수십송이 접어 아내에게 선물하거나 직접 선수들에게 꽃접는 법을 알려주던 모습도 기억난다. 십자수도 그의 취미중 하나였다. 전지 한장쯤 되는 크기의 대형십자수를 놓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악귀처럼 뛰던 것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7월2일 성남 원정경기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남겼다.
어느때보다 이겨보자는 사기가 충천해있었고 팀 내 분위기도 대강 안정권이었던 만큼 대기실에서 경기에 나가기전 화이팅 소리는 우렁찼다. 서포터들의 응원도 경기장을 압도했다.
경기내용도 더없이 좋았다. 수비수로 선발출장한 최형준은 부천에 입단한 이래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골키퍼 한동진도 선방했다. 특히 최형준은 그에게 수억원의 계약금을 안겨줬던 가장 큰 장기, 공중볼 다툼에서 김도훈과 샤샤를 압도했고 김한윤의 적절한 수비수 통제는 빛을 발휘했다.
김성철 - 신승호 - 김한윤 - 윤중희 - 최형준으로 이어지는 수비라인은 이리네 - 신태용 - 김도훈 - 샤샤 - 김대의로 이어지는 성남의 공격을 정말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물론 위태위태한 상황도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무사히 넘겼다.
이때문에 성남은 후반 시작과 함께 이리네를 빼고 데니스를 투입했으며 후반 24분에는 샤샤를 빼고 황연석을, 후반 30분에는 김대의를 빼고 윤정환을 투입하며 안간힘을 썼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날 부천의 수비는 매우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가 시작되고 30분쯤 지났을쯤, 경기중이던 최형준이 벤치에 있던 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경기중에 장비관리사인 나를 부르다니...뭐라고 외치는데 서포터 응원소리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
아, 보통은 경기시작전에 골키퍼가 골대뒤에 놓을 물을 가지고 가는데 그날 한동진이 물을 챙겨가지 않은 것이다. 최종 수비수들은 시간이 날때마다 키퍼에게 물병을 건네받아 마시곤 한다. 상대선수들도 나눠마신다.
당시 K리그 공식 음료수는 파워에이드였다. 파란색 청산가리같은 색의 그 음료는 선수들이 대강 꿀꺽꿀꺽 먹기에는 너무 달았고, 피부에 흘리면 끈끈해졌다. 그래서 부천만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물50%, 파워에이드50%를 섞은 물병을 주로 사용했다. 일부 선수들은 맛없어 했지만 그래도 대강 그렇게 하는 것이 덜 자극적이었다.
나는 물병을 하나 들고 한동진이 서있는 골대뒤로 조심조심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A보드를 넘어가면 바로 운동장인데 거기에 내가 난입(?)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경기는 계속 진행중. 한동진을 잘못 불렀다가 골이라도 먹으면 안되겠기에 나는 조용히 골대뒤에 물병을 던져놓기로 했다.
그런데 음료가 가득찬 물병은 잔디밭에서 의외로 탄력이 좋았다. 한번 퉁 튕긴 물병은 골대 옆 경기장 안으로 떨어졌다. 헉. 내가 그렇게 식은땀을 흘려본적이 또 있던가. 게다가 성남의 공격중. 공에 물병이라도 맞으면? 난 어떻게 해야하지? 온갖 생각이 스쳤다. 다행이도 골은 사이드아웃됐고 난 “한동진!!! 물!!!”하고 외쳤다. 슬쩍 뒤돌아본 한동진이 발로 툭쳐서 물병을 라인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다시 인플레이.
그리고 이어진 성남의 공격. 놀라운 것은 그 물병이 있던 자리로 성남 선수의 슈팅이 지나갔다는 점이다.
전반이 끝났다. 하재훈 감독은 경기력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수비수 한명한명을 붙잡고 “그래 그렇게 하는거야”라고 힘을 북돋았다. 최형준도 프로데뷔 이후 처음으로 주변의 칭찬을 들었다.
다만 다보와 이성재 투톱이 부진했다. 이성재는 후반들어 남기일과 교체됐다.
그리고 후반 16분 윤정춘이 나오고 이원식이 투입된다.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날 이원식 선수는 몸을 풀다가 감독이 부르자 나에게 웃옷을 벗어주며 씨익 웃었다. 뭔가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날의 경기력은 희망을 가져볼만 했다.
그는 경기투입 직전 이성재의 외침에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형! 한골 넣어버려 그냥!”
이원식이 투입되자 경기는 놀랄만큼 활발해졌다. 부천벤치는 약간의 들뜬 기분이 됐다. 모두 이거 잘하면 성남 잡겠는데? 라는 생각을 가지게됐다.
기억에는 이날 심판의 휘슬도 매우 적절했다. 서포팅도 우렁찼다. 리그 최상위권팀을 잡고 승리만 한다면 최고의 팀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셈이다. 그렇게 경기는 0:0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절호의 찬스가 왔다.
누군가가 밀어준 스루패스로 이원식이 단독찬스를 잡은 것이다. 시간은 후반 4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골키퍼는 김해운. 공격수는 부천의 해결사 이원식. 수비수는 이원식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해 두세발 뒤로 쳐져있었다.
이원식의 슛.............그러나........김해운의 손끝을 스친 공은 그대로 아웃이 됐다.
벤치는 물론 서포터까지 절규에 가까운 함성을 내질렀다. 그런 찬스는 또 없었을 것이다...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수는 공교롭게도 옛 부천선수였던 윤정환이 꽂았다. 기록지를 찾아보니 후반 46분이라고 돼있다. 윤정환의 패스를 받은 김도훈이 결승골을 터뜨리고 만다. 그리고....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아쉽다 정도로 끝나지 않을 아쉬움이 우리 모두를 뒤덮었다. 어느 누구하나 말을 꺼네지 않았다. 이원식은 상대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부천서포터와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뜻밖이었다. 그냥 주르륵 흘리는 눈물도 아니고 엉엉대는 대성통곡이었다. 주먹으로 피치를 몇번이고 내려치며, 또 가슴을 치며 그는 그렇게 울었다.
옆을 지나가던 심판도, 우리 벤치에 인사를 하러온 윤정환도, 김도훈도, 하재훈 감독도, 트레이너 선생님들도, 나도... 아무도 이원식을 말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피치로 걸어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형, 일어나세요.
난 그때.
그가 내뱉은 말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아마도 난 바로 이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 이번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원식은 나와 최정민, 이성재의 부축을 받으며, 울부짖으며 그렇게 외마디 소리를 냈다.
“우리가....부천이....”
우리가. 부천이.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30대 중반으로 가는 팀 최고참이. 아직 관중석과 본부석 앞에 관중들이며 경기관계자며 기자들이 드글거리는 그속에서 경기장에 주저앉아 서럽게 엉엉 울던 그가 띄엄띄엄 내뱉은 그 말. 우리가. 부천이.
그는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안되는데, 부천이 이렇게되면 안되는데”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가 그렇게 내뱉은 절규의 단어에 살을 붙이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움 일까.
클럽하우스로 돌아가는 버스안에는 여전히 침묵이 맴돌았다.
이후 부천은 수원, 대전, 울산에게 내리 3연패를 당했다.
그날 성남과의 경기에서 이원식 선수가 골을 넣었더라면 그 경기를 이길 수 있었을까. 그럼 그것이 기폭제가 돼 다른 경기에서도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때문에 그 패배는 상당히 뼈아팠다. 우리가 당했던 29패 중에 하나일뿐이지만 이번 1패는 이원식의 눈물과 함께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7월25일 아침.
난 부산으로 떠나는 원정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선수들이 입을 옷과 수건을 챙겼고 공도 챙겼다.
신문에선 부천이 예전에 대전이 세운 22연속 무승 타이기록을 세웠으며 이번 부산경기마저 비기거나 진다면 새로운 기록을 세운다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난 이당시가 가장 힘들었다. 심지어 나 때문에 선수들이 이기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은 맘 뿐이었다. 그러나 내색하진 않았다.
시간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5편에 계속
- 부천 서포터 김요한 님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