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경기만에 랄랄라도 해보고!
얼마나 좋은지! ^^
랄랄라에 대한 글은
2001년에 올린.
부천 서포터 리딩팀의 김도영님의 글입니다.
불펌 금지.
=======================================================
랄랄라에 대해서...
97년이네요.
한창 월드컵 예선열기로 뜨거워진 축구판에 서포터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피우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우습기 그지 없지만 암튼 새로운 문화에
발맞추어 분주했던 나날들 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2년때인데 다들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왠지 인생에
있어서 이걸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때는 수원과 안양의 양분체제 였고 저도 그 일부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다 꾸준히 하이텔에서 부천서포터 탄생의 조짐이 늘 있어왔고
첫 모임치고는 꽤 많은 90여명의 회원들이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리텔
이렇게 각기 통신 매체는 달랐지만 부천을 지지하고 니폼니쉬 선진축구를
사모하면서 한명 두명 회원이 점점 늘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야 응원곡이라봐야 붉은악마에서 쓰고 있는 (수원, 안양) 것들 뿐인지라
그런것에도 둔했고 괜찮겠지 하고 사용을 했는데 그때 수원하고 안양하고
주도권 세력의 텃새(?)가 심했습니다.
자존심 없는 허접도 아니고...
그래서 나름대로 응원가도 만들어 보고 헤르메스분중에 이탈리아에서
직접 가져오신 CD도 들어보고...
하지만 혼자 하려니깐 이게 진짜 좋은건지 나만 좋은건지를 잘
몰랐었습니다.
지금이야 응원리딩부가 있지만 그때는 목소리 큰사람이 앞에 나와서
서포팅송 부르고 호응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서포팅 송으로 채택이
되어 버리는 추억 같은 일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달성이라는 친구를 97년 11월 1일 한일전 준비하며 전날 잠실에서
우연히 만났고 이런저런 애기를 하다보니 응원가에도 관심이 많은 친구
였습니다.
물론 나이는 나보다 3살 어리지만 늘 친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의기투합해서 겨울방학을 이용해 자주 만났고 전화통화는 매일하며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좋은노래 있으면 같이 책상 쳐가며 불러보고...
그러다 98년 1월 명동 하디스 응원가 비밀모임을 갖었죠.
각자 만든곡들을 선보이고 같이 조율하고...
햄버거 하나 시켜 놓고 5~6시간을 그것도 사람이 많은 명동에서 버텼으니
어지간히 얼굴들이 두껍죠. ^^
거기다 음악 줄여달라하고 응원가를 불러 재꼈으니... 헤헤...
어쨌건 그 때 만든 버전이 지금것과 거의 다른게 없습니다.
추가 된곡이 물론 몇곡 있기는 하지만 그 때 만들었던 곡들은 지금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100년 대계 헤르메스 서포팅 송.
그냥 우발적이 아니라 길다면 긴 4개월을 그 노래를 가지고 입에 달고
살았으니... 직업도 아닌데 말입니다. ^^
그러다 2월에 반포에서 서포터 통신리그가 펼쳐 졌는데 깃발도 제작하고
탐탐이 대신 생수통으로 준비하고...
그때 우리 부천을 포함해 수원, 안양 그 외에도 많은 팀들이 참가한
자리에서 깃발과 서포팅송 시연회를 갖었습니다.
수원이나 안양이나 솔직히 다들 놀라 했습니다.
헤르메스가 빠른시간안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구요...
그 뒤로는 역전되어 99년부터는 우리서포터 옆자리에 앉아 연구를 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고는 했습니다. ^^
랄랄라도 이때 나온 곡입니다.
그래서 남이 쓴다 어쩐다 하면 죽자살자 덤비는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첨에 만들었을땐 앞에 "!!!! 부천 !!!! 부천 !! 부천~" 이 부분이 없이
허밍으로 제가 만들었었는데 왠지 허전하다 싶어 달성이하고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다 지금 현재 쓰고 있는 " 부천FC 알레알레~ 부천FC 알레
알레~ " 이 곡에 앞에 붙어 있던건데 랄랄라를 보완하기 위해
여기다 사용하기 시작 했습니다. (!!!! 부천 !!!! 부천 이걸 말입니다.)
또 처음부터 옆으로 어깨동무 하며 왔다갔다 한건 아니고 지금처럼 골
넣은 후라던지 혹은 경기 끝나고 이긴 다음에 한다던지 같은건 없었
습니다.
조금은 챙피한 애기지만 그래도 우리의 역사이기에...
그냥 하다가 할거 없으면 하고 축구를 보던지 말던지... ^^
솔직히 좌우로 왔다갔다하면 축구 보기는 뭘 봅니까?
지금이야 조금 머리 컷다고 다른서포터 욕하지만 우리라고 특별한 사람
들이 모인건 아니었기에...
지금은 예전보다 화려함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서포터 방향이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98년 초에 하이텔에서 좌우로 왔다갔다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처음에는 지금처럼 인원도 많지 않았고 같은 방향이 아니라 자기
꿀리는대로 움직였기에 지금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어느 통신에서 의견이 처음 나왔고 그런게 중요한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깐 차츰 정착이 되어 가더군요.
경기관전울 위해 가급적 경기중에는 사용을 자제하고 골이 난다던지
그럴때만 사용하기 시작 했습니다.
깃발 드는것도 이때부터 골이 난 이외에는 드느것을 자제 했습니다.
지금도 다른서포터의 죽어라 돌리는 깃돌이 보면 뭐랄까... 쯔쯔쯧...
그러다 선수들과 함께 한 계기는 그 전부터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만의 퍼포먼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 왔고 유럽의
선수들과 서포터를 보면 챔피언 후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선수들이 일렬로 서서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만세 삼창을 외치는것을 했었는데
다들 무안해 하셔서 방향을 돌려 우리가 하는 골세레모니를
99년 정규리그 개막전 울산과의 목동 홈 경기때 승리를 하고 돌아오는
주장 강철 선수에게 같이 하자는 제스추어를 보냈고 즉석에서
강철선수의 진두지휘아래 선수들이 일렬로 서고 그때부터
선수들과의 랄랄라 역사는 시작이 된것입니다.
^^
얼마나 좋은지! ^^
랄랄라에 대한 글은
2001년에 올린.
부천 서포터 리딩팀의 김도영님의 글입니다.
불펌 금지.
=======================================================
랄랄라에 대해서...
97년이네요.
한창 월드컵 예선열기로 뜨거워진 축구판에 서포터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피우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우습기 그지 없지만 암튼 새로운 문화에
발맞추어 분주했던 나날들 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2년때인데 다들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왠지 인생에
있어서 이걸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때는 수원과 안양의 양분체제 였고 저도 그 일부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다 꾸준히 하이텔에서 부천서포터 탄생의 조짐이 늘 있어왔고
첫 모임치고는 꽤 많은 90여명의 회원들이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리텔
이렇게 각기 통신 매체는 달랐지만 부천을 지지하고 니폼니쉬 선진축구를
사모하면서 한명 두명 회원이 점점 늘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야 응원곡이라봐야 붉은악마에서 쓰고 있는 (수원, 안양) 것들 뿐인지라
그런것에도 둔했고 괜찮겠지 하고 사용을 했는데 그때 수원하고 안양하고
주도권 세력의 텃새(?)가 심했습니다.
자존심 없는 허접도 아니고...
그래서 나름대로 응원가도 만들어 보고 헤르메스분중에 이탈리아에서
직접 가져오신 CD도 들어보고...
하지만 혼자 하려니깐 이게 진짜 좋은건지 나만 좋은건지를 잘
몰랐었습니다.
지금이야 응원리딩부가 있지만 그때는 목소리 큰사람이 앞에 나와서
서포팅송 부르고 호응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서포팅 송으로 채택이
되어 버리는 추억 같은 일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달성이라는 친구를 97년 11월 1일 한일전 준비하며 전날 잠실에서
우연히 만났고 이런저런 애기를 하다보니 응원가에도 관심이 많은 친구
였습니다.
물론 나이는 나보다 3살 어리지만 늘 친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의기투합해서 겨울방학을 이용해 자주 만났고 전화통화는 매일하며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좋은노래 있으면 같이 책상 쳐가며 불러보고...
그러다 98년 1월 명동 하디스 응원가 비밀모임을 갖었죠.
각자 만든곡들을 선보이고 같이 조율하고...
햄버거 하나 시켜 놓고 5~6시간을 그것도 사람이 많은 명동에서 버텼으니
어지간히 얼굴들이 두껍죠. ^^
거기다 음악 줄여달라하고 응원가를 불러 재꼈으니... 헤헤...
어쨌건 그 때 만든 버전이 지금것과 거의 다른게 없습니다.
추가 된곡이 물론 몇곡 있기는 하지만 그 때 만들었던 곡들은 지금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100년 대계 헤르메스 서포팅 송.
그냥 우발적이 아니라 길다면 긴 4개월을 그 노래를 가지고 입에 달고
살았으니... 직업도 아닌데 말입니다. ^^
그러다 2월에 반포에서 서포터 통신리그가 펼쳐 졌는데 깃발도 제작하고
탐탐이 대신 생수통으로 준비하고...
그때 우리 부천을 포함해 수원, 안양 그 외에도 많은 팀들이 참가한
자리에서 깃발과 서포팅송 시연회를 갖었습니다.
수원이나 안양이나 솔직히 다들 놀라 했습니다.
헤르메스가 빠른시간안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구요...
그 뒤로는 역전되어 99년부터는 우리서포터 옆자리에 앉아 연구를 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고는 했습니다. ^^
랄랄라도 이때 나온 곡입니다.
그래서 남이 쓴다 어쩐다 하면 죽자살자 덤비는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첨에 만들었을땐 앞에 "!!!! 부천 !!!! 부천 !! 부천~" 이 부분이 없이
허밍으로 제가 만들었었는데 왠지 허전하다 싶어 달성이하고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다 지금 현재 쓰고 있는 " 부천FC 알레알레~ 부천FC 알레
알레~ " 이 곡에 앞에 붙어 있던건데 랄랄라를 보완하기 위해
여기다 사용하기 시작 했습니다. (!!!! 부천 !!!! 부천 이걸 말입니다.)
또 처음부터 옆으로 어깨동무 하며 왔다갔다 한건 아니고 지금처럼 골
넣은 후라던지 혹은 경기 끝나고 이긴 다음에 한다던지 같은건 없었
습니다.
조금은 챙피한 애기지만 그래도 우리의 역사이기에...
그냥 하다가 할거 없으면 하고 축구를 보던지 말던지... ^^
솔직히 좌우로 왔다갔다하면 축구 보기는 뭘 봅니까?
지금이야 조금 머리 컷다고 다른서포터 욕하지만 우리라고 특별한 사람
들이 모인건 아니었기에...
지금은 예전보다 화려함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서포터 방향이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98년 초에 하이텔에서 좌우로 왔다갔다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처음에는 지금처럼 인원도 많지 않았고 같은 방향이 아니라 자기
꿀리는대로 움직였기에 지금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어느 통신에서 의견이 처음 나왔고 그런게 중요한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깐 차츰 정착이 되어 가더군요.
경기관전울 위해 가급적 경기중에는 사용을 자제하고 골이 난다던지
그럴때만 사용하기 시작 했습니다.
깃발 드는것도 이때부터 골이 난 이외에는 드느것을 자제 했습니다.
지금도 다른서포터의 죽어라 돌리는 깃돌이 보면 뭐랄까... 쯔쯔쯧...
그러다 선수들과 함께 한 계기는 그 전부터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만의 퍼포먼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 왔고 유럽의
선수들과 서포터를 보면 챔피언 후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선수들이 일렬로 서서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만세 삼창을 외치는것을 했었는데
다들 무안해 하셔서 방향을 돌려 우리가 하는 골세레모니를
99년 정규리그 개막전 울산과의 목동 홈 경기때 승리를 하고 돌아오는
주장 강철 선수에게 같이 하자는 제스추어를 보냈고 즉석에서
강철선수의 진두지휘아래 선수들이 일렬로 서고 그때부터
선수들과의 랄랄라 역사는 시작이 된것입니다.
^^
혹시 검색의 달인?????
글이 매우 낯익다.. -_-;; 낯설지가 않아~~
이건 도대체 언제 쓴거지.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