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월드컵 경기장에는 처음 가 보았습니다. 수원역에 내려서 시내버스로 이동했는데,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퍼런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니 전의(?)가 불타오르더라구요. 여러 팀들을 만나면서 애증의 감정을 느끼고 싸우다가 정드는 경우도 많지만 얘들은 샤샤가 손으로 골 넣던 시절부터 그냥 싫습니다. 저는 수원 삼성이 종합운동장을 홈 구장으로 쓸 때 원정을 많이 갔었는데, 막상 오늘 공식 발표가 두 팀간 첫 맞대결이라고 하니 좀 이상했습니다. 북문(장안문) 근처의 옛스러운 동네 분위기와는 다른 어설프게 신도시 느낌이 나는 (특례시?) 월드컵 경기장 주변 모습도 그렇고.
아무튼 수요일 안산전에서 아쉽게 비기고 맞이한 경기. 게다가 상대는 지난 라운드 경기가 없어 일주일을 푹 쉰 상태 (염기훈 감독이 부천에 전력탐색차 방문)라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 분명했습니다. 선발 출전 명단에 닐손이 없습니다. 이동희-이용혁이 떠나면서 올해 초 스리백은 서명관-닐손 고정에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여러 선수를 테스트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전인규가 자리를 잡았고 서명관이 올림픽대표 나갔다가 부상을 당하면서 2019 폴란드 U-20월드컵 준우승 멤버 정호진이 주전을 굳히는가 싶었는데 빡빡한 일정으로 다들 체력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었거든요. 그래서 센터백 자리에 이상혁이 선발로 출전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이상혁은 지난해 김포에서 주로 미들로 뛰었지만 감독님이 수비로 기용할 생각으로 영입했고 올시즌 코리아컵 두 경기에서 골도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였는데 결과적으로 이날 MOM이 되었을 만큼 좋은 활약을 했고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혁이 결승골을 넣자 닐손이 달려가서 안아주더군요.
그 밖의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상대 수비의 퇴장을 이끌어낸 루페타의 투지를 칭찬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루페타의 결정력을 감안(?)하면 그 상황에서 치고 들어갔어도 골이 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쉿!), 이렇게 대놓고 반칙을 해주니 뭐 고마울 뿐이죠. 아무튼 후반 이른 시간 퇴장으로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물론 상대 역습에 이은 슈팅이 골대를 맞는 등 고비가 있기도 했지만요. 5월25일 경기에서 이랜드에 패한 뒤 사퇴한 염기훈 감독은 후반 중반이후 빌드업 과정의 허브 노릇을 하던 카즈키를 빼버렸는데 이로서 공격을 1차원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막판에는 뮬리치를 들여보내 가운데 공 띄워놓고 떨군다음 요행을 바라는 전술을 구사했고 부천이 준비해둔 닐손을 투입함으로써 한점차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원은 2004년생 공격수 김주찬 정도가 뛰어난 역량을 보여줬을 뿐 선수들의 개인기량도 상대에 비해 나은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승격을 은행에 맡겨놓은 돈 처럼 생각하는 팬들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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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원정 후 또 이틀 쉬고 목동. 뭐 이런 (9일 동안 네 경기) 스케쥴이 다 있나 싶네요. 이건 구경하러 가는 사람도 힘들 정도인데 선수단이야 오죽할까 싶습니다. 목동은 저한텐 집에서 가까워서 그나마 다행... 원래 서포터도 거의 없고 팬도 드문 목동에서 화요일 저녁에 하는 경기이다 보니 올사람은 거의 다 오는 부천 팬들이 더 많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입구에서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김형근선수의 부상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원전에서 뮬리치 그놈이 몇 분 뛰지도 않았으면서 그 짧은 시간에 흉악스럽게 휘두른 팔꿈치에 맞아 안와골절(구단 발표는 복시현상)을 당했다는 거죠. 이주현의 상무입대로 백업 골키퍼에 경험있는 선수가 없는 가운데 지난 4월17일 코리아컵 목포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 김현엽이 GK장갑을 끼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저 큰 실수만 말아다오라는 심정으로 경기장에 들어갔습니다.
이영민감독 부임이후 부천 축구의 강점 중 하나는 수비라인의 안정감인데... 무려 열세골을 합작한 브루노 실바와 이코바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을 정도로 잘 막았습니다. 다만 전반에 박민서-이동률로 이어지는 상대 역습을 허용해 실점한 대목은 아쉬웠습니다. (이 둘은 25일 수원 전에서 막판 세 골을 몰아넣었습니다. 둘 다 2000년생 왼발잡이인데 잘하더군요.)
0-1로 뒤진 채 시작한 후반에는 아껴 뒀던 카즈, 안재준을 뛰게 하면서 분위기를 가져오기 시작해 결국 바사니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박형진이 사이드라인쪽에서 밀어주는 것을 보고 공간을 파고들어 이정빈이 왼발로 예쁘게 크로스 올린 것을 바사니가 편안하게 머리로 마무리한 교과서 같은 플레이였습니다. 이정빈 선수는 축구 천재가 맞습니다. 올 시즌 초반에 주전으로 나오지 못해서 마음고생이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김포전 결승골을 계기로 자신의 폼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 끝나고 집에 가는데 명지대학교 스포츠-레저학부 과잠을 입은 학생들이 여럿 가고있더군요. 김현엽 선수의 친구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재준의 부상이 크지 않기를 바랍니다.
루페타에게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하트 잘 날리는 루페타 상처 받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