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뭘 해도 안되는 날이 있는 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제가 바로 그런 잘되는 날이었네요. 상대에 대한 분석의 적중, 선수들의 투지 있는 플레이, 그리고 시원한 날씨까지 만족스런 하루였습니다.
경기 시작 직후에 위기가 있었습니다. 아산의 빠른 땅볼 크로스가 김현엽 골리를 스치며 상대 공격수의 뒤쪽으로 흐르면서 다행히 실점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선수들의 투지 이야기를 했는데요, 프로 수준에서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을 정신력 혹은 투혼으로 극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전임 송선호 감독님이 강조했던) “하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 중요합니다. 어제는 최고참 한지호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과감한 슬라이딩태클을 날리면서 볼을 따내고 상대의 기를 죽이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습니다. 한지호는 전반만 뛰기로 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아 걱정이 될 정도 더라구요.
박현빈의 득점은 원더골이란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멋진 골이었습니다. 2019년 전남전에서 송홍민이 넣었던 장거리 발리슛을 연상하게 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먼 거리에서 때리는 슈팅은 발등에 정확히 “얹어서” 미사일처럼 날아가는데, 박현빈의 슈팅은 살짝 빗겨 맞으면서 (선수도 ‘삑사리’라고 함) 오히려 속도가 약간 죽으며 크로스바 살짝 아래를 스치듯 들어가 올림픽대표 출신 신송훈 골키퍼도 전혀 반응할 수 없었습니다. 박현빈은 2003년생으로 지난 2년간 인천에서 뛴 젊은 선수입니다. 중원에서 많은 활동량을 보여줬던 최재영의 부상 공백을 메워줄 22세 이하 선수가 등장해 팀에 큰 힘이 될 듯합니다.
어제 경기 루페타를 빼고 이야기 할 수는 없겠죠. 지난 시즌 막판 약 한 달간 경기가 없을 때 팀이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연습경기에서 루페타가 뛰어난 활약을 보여 한 1부리그 팀이 영입을 타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루페타는 분명 상대 수비를 굉장히 힘들게 하는 선수인 것 만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공격수로서 결정력이 떨어진다는 큰 아쉬움이 있었던 거죠. 저는 루페타가 터지지 못한 이유를 크게 두가지로 봤는데요, 우선 거친 상대수비를 들 수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루페타를 상대하는 팀들은 대부분 수비들이 밀거나 유니폼을 잡아당기는 등 반칙성 플레이를 많이 합니다. 심판이 이걸 불어주지 않으면 공격수는 답답할 노릇이죠. 물론 이건 모든 스트라이커가 이겨내야 할 문제니까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적응해서 살아남는 수 밖에요. 또 하나의 이유는 다소 거친 루페타의 첫 터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부천의 외국인선수 바그닝요나 말론에 비해 득점 생산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스스로 1:1 찬스를 만들어내는 세밀한 터치능력의 차이라고 저는 봤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이 두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한 모습이었습니다. 심판들이 수비들의 반칙성 플레이를 적절히 잡아주기도 했지만 안 불더라도 과거처럼 짜증을 내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첫 터치. 어제 루페타의 첫 골은 최병찬이 밀어준 공을 가슴으로 툭 쳐서 자신의 오른발 밑에 떨궈 놓고 완벽한 1:1 찬스를 만들어 골대 안으로 쑤셔 넣어버린 올 한해 루페타 플레이 중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골은 되지 않았지만 중원에서 문전으로 밀어놓고 수비수를 등지면서 한바퀴 돌아 골키퍼와 1:1로 맞선 (슈팅이 GK 발에 걸림) 상황을 만들어낸 것도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기 충분했습니다. 얼마전에 한 카톡방에서 제가 “2019년 말론도 5월 중순부터 골 넣기 시작했다”고 쓴 적이 있었고, 그 직후 루페타가 전남전에서 첫 필드골을 넣었는데 지금의 페이스라면 우리도 모처럼 외국인 공격수 덕 보면서 축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A매치 휴식기 이전의 일정을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선수단과 팬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후기 잘 보고 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