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 유감
올해부터 하나은행 코리아컵으로 이름을 바꾼 FA컵은 어느 나라 에서든 최고의 역사와 권위, 그리고 전통을 가진 대회입니다. (참고로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노력하던 1995년, 해외 일곱 팀을 초청해서 우리나라 국가대표까지 총 8팀이 겨루는 코리아컵 이라는 대회가 이미 있습니다. 공모를 한다든가 해서 이름을 좀 성의 있게 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FA컵에서는 하위리그 팀이 상위리그 팀을 잡는 이변이 평소보다 높은 비율로 일어나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2000년 프랑스컵 축구대회에서 당시 4부 소속 칼레FC가 준우승을 차지해서 전세계 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FA컵에서는 2019년까지 대학 팀들도 참가했는데, 심심찮게 프로팀들을 이기기도 했습니다. 대중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스토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죠. ‘칼레의 기적’ 당시에 저는 왜 유독 FA컵에서는 이변이 많이 일어날까? 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그 답은 의외로 간단 했습니다. FA컵 상금이 너무 적어서 프로팀들이 열심히 뛰지 않기 때문 이었죠. 반면, 하위리그팀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킬 기회로 여겨 최선을 다하니 동기부여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이구요. 물론 실력 차이 때문에 여전히 업셋이 쉽지는 않지만.
KBS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FA컵의 우승상금은 3억원으로 9년째 그대로입니다. K리그1팀 주전 선수 한 명의 연봉보다 적은 금액입니다. 상금은 그렇다 치고 대회 일정을 프로리그 중간에 넣다 보니 팀들은 리그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FA컵 대회도 치러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무더위 속에 벌어진 19일 경기만 해도 부천은 15일 전남 원정과 23일 청주 홈경기 사이에, 광주는 15일 김천 홈경기, 22일 대전 원정 사이에 있어 컨디션 조절이나 선수 기용 로테이션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FA컵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이기면 좋고 져도 그만인’ 대회로 전락하게 된 것이죠.
또한 TV중계와 VAR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K리그가 전 경기 (OTT포함) TV생중계 시스템을 갖춘 게 몇 년 되지 않습니다.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이는 프로축구의 흥행 성공으로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16강전이 벌어진 19일 한 중계는 오디오 상태가 매우 불량해 한쪽 스피커로만 소리가 나오는 일도 있었고 VAR을 운영하지 않아 청주-성남 전에서는 명백한 오프사이드가 골이 되는 등 석연치 않은 장면이 속출했습니다. K리그와 FA컵은 주관 단체가 다르지만 프로연맹과 축구협회가 철천지원수가 아니라면 중계권이나 VAR운영 협정 등을 맺어 FA컵에서도 프로축구 정규리그와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팬들에게 제공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어려서부터 유럽축구를 보며 자랐습니다.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잔디와 팬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전용구장, 박진감 넘치는 카메라 앵글 등은 당연한 상수가 되었습니다. 팬들의 눈과 수준은 이미 높아졌는데 축구협회는 FA컵이라는 상품을 이름만 바꿔놓고 너무 편하게 장사하는 거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날씨. 19일은 경기 시작 후에도 기온이 섭씨 30도 정도 되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선수나 팬 모두를 위해 경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는 혹서기에 2-3주 쉬거나 최소한 주2회 경기는 없도록 일정을 짜야 할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돔구장 건설과 추춘제 전환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