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얄굿은 운명이죠?
경기 잘 안나오던 양주의 이성제 선수는 굳이 부천과 경기 때
스타팅으로 나와서 골을 넣고 결국 대패를 선사합니다.
역시 경기 잘 안나오던 조현두 선수가 굳이 부천원정을 시간을 내서
와서는 또 골을 넣고 중요한 순간에 패배를 선사합니다.
이번 동계훈련에 게임보다는 코칭에 비중을 둔 것으로 알려진
남기일 코치가 스타팅으로 나와 부천을 괴롭혔습니다.
게다가 거의 뛰지 않던 이원식 코치까지 후반에 등장해
골까지 넣으며 우리의 꿈과 기대에 찬물을 끼엊었습니다.
이성재, 조현두, 남기일, 이원식...
경기 전에는 윤정춘 등 역시 OB들이 경기에 관심을 보이며 덕담을 했고,
실제 경기장에는 김지운 등 몇명의 OB가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OB는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춥고 약속이 많은 연말에 부천까지 굳이 왔던 선수들이 대부분이네요.
좋게 말하면 OB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앞에 나타나 커다란 좌절을 주면서
더욱 성장힐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FA컵 대비 OB전을 참가해놓고선
정작 FA컵에 다시 나타나 이런 고통을 주다니, 이런 운명이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OB가 좋습니다.
누가 뭐래도 그들과 추억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걸 버리면 과거가 다 날라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 덕분에 우리가 여기 있는 것 아닐까요.
그들이 부천을 죽이기 위해서 안뛰다가 뛰었을까요?
반대로 헤르메스 앞에서 자신이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비록 상대팀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지난해에는 어쩌면 경기장을 찾은 헤르메스 수 많큼의
OB가 경기장에 돌아왔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하지 않은 바티와 같은 사례를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 가슴에 비수를 꽃은 OB들.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어서 빨리 구단을 키워서 아예 우리가 다 데리고
와야겠습니다. --;
...
부질없는 짓이지만, 가정을 해봅시다.
우리가 이겼다면...
다음 라운드에서 K리그 팀과 붙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3R부터는 원정을 가도 관중 입장 수익을 배분 받습니다.
우리 경기는 많은 관중이 모일 것이고, 배분 받은 수익은
현재 직원을 50% 감원하고, 선수 수당도 삭감하는 등 생존을 위한 투쟁 중인
우리 구단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3R 진출이 확정되면 일부 기업에서는 한국의 칼레라는 컨셉의
TV-CF를 만드네 마네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5천 정도의 콩고물이 예상되고, 이 경우 SK에너지 후원이 종료되는
내년의 구단 생존을 담보할 수 있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현재 내년 구단 운영을 위한 자금은 약 6천만원 정도가 확보되었으며,
올해 정도의 운영을 위해서는 최소 1억5천 정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졌습니다.
모든 게 꿈이 되었고, 우리는 처절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T.T
이런 힘든 현실을 그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유료관중 3천입니다. 아... 멀고도 함한 길입니다. 3천!
...
저도 우리 팀이 움추린 줄 알았습니다.
우리 찬스에도 미들의 공격 가담이 적고, 오버래핑도 적었구요.
웅크리고 있다가 역습하는 전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못 올라온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볼 때 대등한 경기로 보였지만, 우리 미들이나 윙백이
마음놓고 치고 올라오기 힘든 분위기를 만든 게 상대의 힘이 아니어나 싶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팀은 무서운 집중력으로 실점을 하지 않았고..
단 5분이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아.. 그런 기쁨.. 승리의 기쁨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부둥켜 안고 울게 만들 수 있는지.. 안경이 부서지고
휴대폰이 박살나도록 말이죠. 아! 뭐가 진짜 이뤄지는 줄 알았습니다!
기적이 이렇게 내눈 앞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노련한 플레이에 실점을 하용하고, PK까지 주었는데요..
PK는 맞는 것 같습니다. 안불어도 난리나는 그런 상황은 아닌데,
심판에 제대로 본 상황에었기 때문에 불어도 할말없는 뭐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도전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
어찌됐던 머리와 마음은 따로 노는 법입니다.
늦도록 술을 마시고, 차에 돌아와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뜨니 새벽 2시. 벤치코트를 입지 않았으면 꽁꽁 얼어버렸을지도..
일어나서 차를 그냥 두고 택시 타고 집에 왔다가
방금 다시 부천에 가서 차를 가져왔습니다.
어제 경기 막판 10분이 꿈인 것 같습니다.
...
토요일 2기 경기.
경기 시작할 때 입장한 팬들이 매우 적었습니다.
후반이 되어가니 어느 정도 관중이 왔습니다.
이 경기를 몹시 보고 싶었을 헤르메스도 경기시작 때 별로 없었습니다.
주 5일 근무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 토요일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참 힘들게 열심히 살고 있고, 덕분에 이런 엄청난 경기를
보기 위해 제시간에 오는 것도 힘든 동생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사무실 갔다가 12시 경에 눈치보다 겨우 왔구요..
경기 시작 후 헐레벌떡 오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구단도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함께 외치는 우리 모두도 정말 잘 되어야 한다..
잘 되겠죠?
한 선수가 경기 후 열받아 있는 제 옆을 지나며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년에 다시 하면 되잖아요."
...
집에 돌아와 어제 축구장 들고 간 가방을 정리했습니다.
입장권을 살 때 받은 FA컵 가이드북이 있습니다.
펴보니 우리구단 설명이 있는데요.. 팬이 만들고 운영하는 구단...
FA컵 전적란에... '첫 출전'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네. 첫 줄전...
처음이었죠...
처음부터 고대 박살내고...
1R MVP 배출하고..
축구협회 첫화면 장식하고...
큰 일 했습니다.
처음에 그 정도면 된건가요..
설기현이 뛰었던 레딩이 그때 100년 만에 1부리그 올라온 것이라고요..
우리 지금 3년째... 할만큼 한 건가요..
아쉬움을 '할만큼 했다'는 말로 마구 위안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다시 K리그 팀과 경기에서..
지옥에서 살아온 징글징글한 우리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올 시즌..
다시 잘 해 봅시다..
유료 관중 3천 찍고...
후원사도 한두개 더 받고...
FA컵 진출권도 다시 때내구요..
정말 다행히 우리 팀 멤버가 아주 좋습니다.
도전을 포기할 이유가 아직은 없습니다.
읽고나니 아주 조금 진정이 되긴 하네요. 그래도 오늘 밤은 하루 더 술의 힘을 빌려야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