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축구에 미쳐 서포터임을 자임한지 15년이 넘어 갑니다.
대학생이었던 제가 아이 아빠가 되었고, 지금은 아이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갑니다.
인간이 한 분야에 이 정도 시간을 몰입했으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투자한 시간이 가치있는 시간이 되니까요.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그래서 지루해지면, 또 다른 많은 이유로 떠나가기도 합니다.
"나와 또 여기 많은 친구들은 왜 이 바닥에서 이렇게 들이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마약 같은 축구 서포터 생활에 대한 어설픈 연구아닌 연구를 했고,
혹시 해외여행 기회가 있으면 해당국가의 주요 축구경기 일정에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뭔가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90년대 말, 00년대 초 부천 헤르메스를 통역까지 대동하고 직접 찾아와서
'서포터의 자세', '응원방식', '선수단을 대하는 자세', '구단과의 관계' 등을
꼬치꼬치 묻고 갔던 우라와레드 다이아몬드 서포터가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또 역으로 제가 사이타마를 찾아가서 우라와보이즈 대표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쪽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느낀 것인데요...
듣고 보면 참 의외일 수 있습니다.
그건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우라와보이즈는 서로 무지하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무지막지하게 얽혀 있는 사랑. 근 10년 넘게 시스템을 유지하며
운영하는 내면에는 결국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게 상명하복의 일본 전통문화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만,
차차 이야기할 남미나 유럽사례를 들어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또, 우라와 서포터 사이에도 내부에 계파다툼이 있지만
큰 틀이 깨지지는 않고 자발적 소수는 어디에나 있기는 합니다.
우리 서포터는 조금 커지기 시작할 때, 반으로 쪼개지는 게 흔한 일입니다.
현재 K리그 서포터들도 모임이 쪼개진 곳이 몇 있고,
우리도 하나로 화합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분열이 성장의 길목에서 우리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우라와보이즈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확고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반 관중도
서포터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서포터의 기본 덕목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서포터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90분 내내 응원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경기에 패한 선수들에게 박수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사람이 누군가를 저렇게 지지할 수도 있구나"라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강렬한 느낌 속에서 20대 중반 힘들던 시기를 서포터 생활에 빠지면서
견딜 수 있었고, 그 이후 부천축구는 저를 일으킨 하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주변의 서포터들도 비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믿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사랑.
이게 오늘날의 우라와레즈와 헤르메스의 모습을 가른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여러 이유가 있긴 하죠. 연고이전, 잃어버린 초심 등)
앞으로 더 근거를 대기위해 노력하겠지만,
제 결론은 "결국 서포터는 조건없는 사랑 위에 서 있는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어제까지 욕하던 선수가 우리 팀에 오면 바로 자세를 바꾸어
"이제 너는 우리 가족이며 아무도 너를 건드릴 수 없다"는 식으로 면상을 싹 바꿀 수 있는 것 입니다.
사랑은 사랑인데, 지극히 배타적인 사랑입니다.
또 믿음과 존경이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이런 전제조건을 깬 대상은
다시 축구장에 올 수 없는 없는 잔인한 측면도 있긴 합니다.
요즘 축구단 재정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동력을 잃어버린 헤르메스의 분위기 쇄신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제 20년을 바라보는 헤르메스는 늙은 조직입니다.
전통이 있다는 것은 좋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걸어온 선구자적이고 험난한 길을 우리 스스로 잊고 있기도 합니다.
팀을 잃어도 헤르메스가 살아있으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쩌면 있는 팀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돈을 횡령하거나, (성)폭력 또는 거짓사실 유포와 같은 중죄가 아니라
의견차이, 관점차이, 친분의 차이 정도는 무시하고 한 차에 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두루 들어보아도 (거의 없긴하지만) 약간의 우리 내부 갈등
같은 것도 별거 아닌 것들입니다.
서로 믿고 사랑합시다. 그리고 존경 합시다.
제가 이제 곧 40입니다. 어쩌다 경기장 일 때문에 한 경기 응원을 제대로 못하면
"내가 죽기 전에 부천FC를 응원할 수 있는 경기가 한 경기 줄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듭니다.
죽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겠죠. "아! 우리 딸은 한번만 더 안아 봤으면!"
또 이런 생각도 들겠죠. "부천FC 경기 한 경기만 응원해 봤으면!"
앞으로 몇년이나 또 몇 경기나 열정을 토해내며 어려운 시절 힘을 주었던
부천축구를 응원할 수 있을까요. 세어보면 의외로 몇 경기 안됩니다.
여든, 아흔까지 장수만세를 외친다해도,
팀에 대한 사랑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꿈을 이룰 시간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랑합시다!
(나이드니까 미친소리 한다는 놈들 있겠네 --;)
좋은 말씀만 하시는듯.
도서관 갔다가 신동민님이 쓰신책 봤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