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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꿈 키우는 청소년대표 GK 출신 차기석
히딩크가 탐냈던 유망주, 만성신부전증 시달리며 콩팥 두번 이식받았지만…
이젠 GK연구소서 땀 뻘뻘
#독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6년 6월, 앞날 창창한 스무살 골키퍼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만성신부전증 말기, 콩팥 두 개가 기능을 못해 아버지의 콩팥 하나를 받았다. 그래도 그땐 콩팥 3개의 사나이에게 재기의 희망이 있었다.#2008년 3월, 피나는 재활 끝에 기회가 왔다. 소속팀 전남 박항서 감독이 개막전 출전을 귀띔했다. 리그 개막을 엿새 앞둔 새벽, 불운한 골키퍼가 다시 쓰러졌다. 이번엔 작은아버지 것, 콩팥 4개를 달자 다시 희망이 불타올랐다.
차기석(24), 1m92의 키에 유연성과 순발력이 남달랐던 그는 히딩크 감독이 탐낸 차세대 대표 수문장이었다. 2002년 U-17 아시아선수권 MVP, 2004년엔 U-19 아시아선수권에선 박주영·백지훈과 함께 우승의 주역이었다. 남아공월드컵 주전 골키퍼 정성룡(25)도 당시엔 차기석에 밀려 벤치를 지켰다. 그랬던 그가 한 맺힌 그라운드를 떠난다. 대표팀 수문장 이운재의 떠들썩한 은퇴에 비할 바 없지만 그래도 그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 ▲ 한때 히딩크 감독이 탐낸 차세대 대표팀 수문장이었던 차기석은 병마에 휩싸여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콩팥 4개와 함께 다시 일어섰고 현재‘한국GK연구소’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장민석 기자
■새로운 도전 준비하는 차기석
"다 옛날 얘기죠. 화려했던 시절 생각하면 더 힘듭니다."
차기석은 목포대 체육교육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뜻은 아무래도 학문보다 지도자가 되는 데 있다.
그는 올 1월부터 강원도 횡성 '한국GK(골키퍼)연구소'에서 초·중·고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대한축구협회 전임 골키퍼 코치를 지낸 박영수(51)씨가 2006년 전문적인 골키퍼 트레이닝을 위해 설립했다.
2008년 여름 소속팀 전남에서 재계약을 않겠다는 통보를 받은 그는 지금 3부리그 격인 아마추어 K3리그의 부천FC 유니폼을 입고 있다.
"경기마다 1000명 이상의 팬이 열성적인 응원을 펼칩니다. 그들의 성원을 받을 때마다 축구가 여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느껴요. 축구를 버리겠다는 생각도 고쳐먹었고요. 제 인생이 참 굴곡이 많죠? 그래도 저 10대 때…."
■초특급 유망주
차기석은 포항동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투포환 선수를 하다 유난히 큰 키가 축구부 감독의 눈에 띄었다.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기 싫어하는 성미가 골키퍼 장갑을 낀 결정적 이유였다.
"축구만 하면 다들 공격을 하려고 하죠. 근데 전 몸을 날려 공을 막아내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내 길이다 싶었죠." 포항제철중에 진학했지만 그곳 감독과 마찰을 빚다 쫓겨나듯 서울 경신중으로 전학 갔다.
그때 독기(毒氣)가 생겼다. 서울체고로 진학한 후엔 미친 듯 훈련에 매달렸다. 밤 11시까지 줄넘기를 했고 체력을 키우려 복싱부에서 스파링을 하기도 했다. 기회는 뜻밖에 찾아왔다. 주전 3학년 골키퍼가 큰 부상으로 1년을 쉬었고 1학년 차기석이 그 자리를 메웠다. 각 대회에서 눈부시게 활약한 차기석은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거치며 한국 축구의 미래로 떠올랐다.
2005년 20세 이하 세계선수권을 다녀온 뒤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감독이 히딩크였다. 그 사실이 알려진 후 차기석의 주가는 치솟았다. 그러나 병마(病魔)는 행복한 그를 노리고 있었다.
■지도자 차기석을 기대해달라
"한국 축구를 바꿔 놓고 싶어요. 특히 아직도 미흡한 골키퍼 양성 시스템을 제 힘으로 확립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가 변화를 줄 만한 위치에 올라서야겠죠. 일단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겁니다."
올해 초 한 대학에서 좋은 조건으로 코치직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지도자도 한 단계씩 기본기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차기석은 지난해 9월 3급, 올 5월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모두 수석이었다.
하루 세 시간씩 자는 강행군 속에 생전 처음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발표 자료도 만들어봤다. 연말엔 1급 지도자 연수에 들어간다.
"할머니가 절 참 많이 예뻐하셨어요. 공교롭게도 2005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론 인생이 꼬였어요. 아픈 뒤엔 산소에도 안 갔어요. 왠지 펑펑 울 것만 같아서요. 더 성공한 모습으로 가서 뵙겠다는 마음입니다."
네이버 축구 메인에 기사가 연달아서 떴더군요! 옛날기사도 있긴하지만!! 감격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