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008과 처음 메일을 주고받았을 때와 직접 만날때까지는 2주가 넘는 시간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james008이 '호주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알려온 것입니다.
호주에 무슨 일로? 바로 그때 2월에 호주에서 U-21 청소년대회가 열렸습니다. 고 조진호 부산 감독이 뛰었던 그 대회죠. 최용수 감독도 이때 대표팀 원톱으로 뛰었던 대회로 기억합니다. 이 대회를 보러 보름 정도 호주에 갈거라고 했습니다.
지인 몇명과 같이 비행기 가서 현지 교민 집에서 자고 경기장에 가는 식으로 경기보고 응원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음...축구동호회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원정응원을 가는...
네 초창기 활동은 그렇게 처음부터 좌충우돌이었던 거죠. 의외의 '최초' 기록들이 은근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도 다 풀어나갈께요.
'칸타타 선언'보다 더 앞선 '온라인 축구동호회의 나갈 길'에 대해 선언했던 적도 있고 해요 ㅎㅎㅎ
어쨌던 james008님은 돌아오자마자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교보문고에서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축구동 이야기 보다 호주가서 축구경기 본 이야기부터 먼저 시작했죠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나중을 생각해 보면 붉은악마의 1998 프랑스 원정의 프롤로그판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 이야기를 할 날이 오겠죠. 1998년 다녀와서 하이텔 축구동과 나우누리 축구동에 무려 30여편이 넘게 글을 올렸으니까요.
본격적으로 축구동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james008이 왜 축구동 대표가 될 수 없었냐면 당시 하이텔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동호회 시삽(sysop : system operator의 약자입니다. 보통 게시판 운영관리자를 이렇게 불러요)은 하이텔 이용요금 연체기록이 없어야 한다"
james008 양현덕님이 호주 가 있는 동안 하이텔 이용요금을 안낸 겁니다...아이고....
집안에다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식구들이 그거 내는거 깜빡했다는 겁니다. 뭐 이런저런 요금들 며칠 늦더라도 연체료 얼마 내고 끝이지 크게 문제되는 일은 드물잖아요? 그런데 그 큰일이 난 겁니다.
Lovetree 김현희 님도 연체 경력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엥??? 그럼 저만 남네요? 전 가입한지 이제 한달 가까이 되어 가는데 거기다 전 3개월 단위로 요금을 내는 방식을 택한지라 요금 연체 되려면 아직 한달 넘게 더 남았습니다.
"그럼 Tirano 양원석님이 대표시삽 하셔야겠는데요?"
"아니 내가요? 이거 sysop 자격중에 3개월 이상이라는 조항이 있는데?"
"물어보니 동호회 개설 시점에서의 3개월이니까 어차피 동호회 만들어 지려면 신청한 뒤에도 5월 이후입니다. 될겁니다. 필요하면 접수하면서 한번 더 물어보자구요. 아님 그때가서 다른 발기인 분들 중에 맞는 분이 계시면 그분께 부탁해 보자구요"
네 그렇게 제가 하이텔 축구동호회의 2대. 실질적인 초대 대표시삽이 된 거였습니다.
운명의 스노우볼은 그렇게 굴러갔던거죠.
제가 첫번째로 제안한 것은 "발기인 분들 한번 다 모여보자!"였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여의도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OK. 상징적이기도 하고 교통도 나쁘지도 않고. 그럼 여의도 어디냐?
뭐 지금이라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모이자고 했을거 같네요. 그런데 그런 부분 잘 몰라서 여의도 중학교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일요일에 보기로 한 지라 그때 최대 30명이 들어갈만한 식당 찾기도 애매했죠. 지금과는 여의도 부근이 달랐던 때입니다. 당시는 거의 비지니스 타운이라서 주말에 여는 식당들은 무척이나 드물었어요. 그래서 그런거 따지지 말고 운동장에서 보자고 한 거였습니다. 어차피 축구동인데 운동장에서 보는게 뭐가 어색하겠냐고 말이죠...ㅎㅎ
간단한 간식거리는 그 근처 김밥집에 김밥 30개 싸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이때 james008 양현덕님이 김밥값 다 내셨습니다. 그리고 발기인 분들께 '창립회의'하겠다고 이야기 돌렸고 한분두분 '참가 가능' 답변이 왔습니다.
당일. 18분이 오셨습니다. 창립회의를 했고 '축구'가 좋아서 오신 분들이셨습니다.
이분들이 대한민국 최초의 온라인 축구동호회의 시작을 하게 된 분들입니다.
드디어 시작이다. 라고 하며 일단 게시판에서 글 열심히 쓰자 지금은 찬 바람 부는 운동장에서 이렇게 모였지만 경기장에서도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팀 응원도 신나게 해 보자고 했습니다.
뭐 만나서 한두시간 동안 그런 이야기 하고 자기가 아는 분들 PC통신에 가입하게 해서 숫자 늘려보자는 말도 했습니다.
아젠다는 일단 5월경 동호회 접수가 시작된다고 하니 그때 지원서류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2월말이었기에 아직 쌀쌀했습니다.
제가 대표시삽. james008 양현덕님과 Lovetree 김현희 님이 부시삽으로 그리고 여성 운영진 중 한분으로 jjeowl 정지은 누님(운영진 중 가장 나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운영진을 이날 확정지었습니다.
저는 새파란 20대 초반이었고 정지은 누님이 20대 중반. 김현희 님, 양현덕 님은 저보다 어렸습니다.
말이 '젊음'이지 어린애들이었던 거죠.
이날 오신 분들도 저희와 비슷한 나이대가 대부분이었지만 나이 더 있으신 분들도 수고한다며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하이텔 축구동호회의 30여명은 활발한 게시판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즌도 이제 시작하고 하이텔의 sports게시판은 [축구동] 말머리가 곳곳에서 보였고 여기에 발맞춰 [야구동] 말머리를 단 게시물들이 늘어났습니다. 잘 찾아보니 발기인 명단에 없던 분들도 알음알음 늘어나게 되더라구요. 축구동호회를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이제는 [축구동][야구동] 말머리가 안달린 글을 보려면 몇페이지를 넘겨봐야 하는 일까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도배질'이 엄청 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이텔 축구동과 야구동 창립을 준비하던 회원들은 이로 인한 시련을 맞게 됩니다.
우스갯(?) 소리지만 이 정돈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무나(?) 읽을 수 있다 생각하니 아쉽네요. 혹여 누가 다른 게시판에 퍼다 나를까 걱정도 되고요. 저 역시도 당연히 제 3자 이지만 우리끼리만 알았으면 하는.. 소중한 이야기네요. ㅎㅎ
글 써주시는 양원석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