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에 빠져 있으면서 일단 지켜보기만 했던 어느 날 메일이 날라왔습니다.
"축구협회 기관지 '축구가족'의 편집장 김신기입니다. 언제 한번 뵈면 좋겠습니다.
연락처는 XXX-XXXX 입니다"
에??? 이게 뭔일이지?
축구협회에 기관지가 있었다고? 첨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던게 외부에 안돌고 그 안에서만 도는 잡지였으니까요. 그러니 축협 직원이나 관련자가 아닌 저는 당연히 몰랐죠.
일단 궁금하기도 해서 연락했습니다.
편집부는 여의도에 있었습니다. 축구협회 내에 있지 않았어요.
알고보니 정몽준 회장이 만든 잡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여의도의 한서빌딩 안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집 근처에 여의도로 가는 버스가 있고 그 버스가 한서빌딩 근처에 섰습니다. 대신 뺑뺑 돌아갔습니다. 그땐 지하철 5호선 없던 때고 환승할인도 없던 때라서 그냥 한번에 그 버스 타고 갔습니다.
여튼 편집부에 들어서자마자 김신기 편집장님이 굳게 악수하셨습니다.
PC통신을 여러 이유로 하고 있었는데 하이텔에 축구동 있는걸 얼마전에 알았다고 했습니다. 대표팀 경기를 모여서 보러 간 것도 알고 계셨어요.
지켜보고만 계셨는데 도와주고 싶다면서 연락을 하신 거였습니다.
와...너무 기뻤습니다. 축구협회 분들이 우리 움직이는걸 이렇게 알고 계셨다니.
그리고 놀라운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당시 인기작가인 고원정 선생님이 쑤욱 들어오시더라구요.
고원정 선생님을 저에게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당시 [최후의 계엄령] 이라는 소설이 대히트를 쳤는데 집필실이 바로 위층이라는 겁니다. 거기다 고원정 선생님도 축구 아주 좋아하신다고 하면서 자주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 인연으로 유치전에 활발하게 진행 될 때 MBC에서 만든 축구 다큐멘타리를 고원정 선생님이 집필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최초의 A매치가 열린 경기장을 찾아내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 것이 저였습니다. 잠깐 옆길로 가서 이야기 하자면 이때 축구협회에 이런거 전산작업 전혀 안되어 있었습니다.
워드...정확히 말하자면 아래한글로 정리해 놓은 파일 몇개가 전부였습니다. 엑셀작업도 안되어 있어서 원하는 자료를 sort 할 수도 없었습니다.
역사 좋아하던 저로선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축구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건지...그리고 그 역사의 줄기는 어디에 있는건지...
한숨 팍 쉬었고 그건 고원정 선생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 작은양의... 얼기설기 찢어진 누더기를 가지고(진짜 A4용지에 아래한글로 경기날자와 스코어만 있었습니다...) 저는 도서관을 뒤졌습니다. 두달동안 중앙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실 고정멤버였습니다. 아침 9시에 들어가서 오후5시까지 옛날 신문들을 다 뒤져가며 경기날 2주 전부터 경기 2일 뒤까지의 신문을 모조리 뒤졌어요.
그렇게 찾아내서 복사한 자료들을 가지고 고원정 선생님은 다큐멘타리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셨고 MBC는 드디어 대한민국 국적으로 치룬 최초의 A매치를 치룬 경기장인 런던 근처에 있던 작은 경기장 "덜리치 해리스"경기장을 찾아가서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동아일보 한 구석에 '덜리스 햄릿'이라고 표기된 당시의 신문기사 한줄만으로 영국으로 날라가서 FA가서 1948올림픽 대한민국과 멕시코와의 경기를 치룬 경기장을 찾았다고 고원정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을 때 속에서 눈물이 흐르더군요. 왜 이 경기장을 찾기 위해 수십명이 고생해야 했을까. 왜 기록이 없을까. 진짜 저 다큐멘타리 빼놓고는 1948년의 동아일보에 실려있던 딱 한줄, 한단어가 다였습니다.
이래서 나중에 제가 스토리를 잡은 전세훈 만화가님의 축구만화 "슈팅"의 청소년대회편에 등장시켰습니다. 누군가에게라도 더 기억시키고 싶어서였습니다.
만화 슈팅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겠습니다.
이 뜻에 공감하는 친구를 만난 것도 바로 이 PC통신에서였습니다.
이 긴 작업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오래전 저의 오랜 동료이자 동반자인 윤형진군이 여러 후원을 받아 "붉은악마, 60년의 역사"라는 책으로 하나의 이정표를 찍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75년사가 나오고 했습니다.
축구선수들. 축구 행정가들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거대한 이정표를 저는 첫발만 띄었고 윤형진군이 작업의 대부분을 맡았습니다. 또한 하이텔축구동회원이었지만 축구협회에 입사해서 많은 실무를 해 주신 송기룡 차장님도 많이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붉은악마, 60년의 역사" 입니다.
이거 관련해서는 나중에 이 이야기들 중에서 꼭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이텔 축구동은 한국 축구문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게시판 문화 뿐만이 아니라 붉은악마 결성 이전에도 시나브로 한국축구라는 유산을 지키고 보존하고 만들고 있었어요.
그래서 1997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PC통신은 동호인들에게 거대한 선물이었다. PC통신 때문에 거리가 사라졌다. 서울에 있는 사람이건 부산이나 제주도에 있는 사람이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여러사람에게 알릴수 있고, 몰랐던 사람들을 알게 되서 축구장에 모일수 있게 되었다. 이전엔 이런 수단이 없었다. PC통신은 거리의 장벽을 부숴버린 혁명이다."
아직도 하고싶은 이런 작업은 많습니다.
그냥 여기저기 발자국을 찍고 다닌 거 같아요. 그 시발점이 바로 김신기 편집장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이텔 파업을 듣고 바로 도와주기로 한 김신기 편집장님은 바로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대로 홍보를 한번 크게 해 보자" 였습니다.
기다리던 글이네요
책도 한번 봐야겠어요
매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