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하이텔 축구동호회의 운영진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성 부시삽이었던 jjeowl정지은 누님이 부시삽을 사퇴하셨습니다.
당시 "한도컴퓨터"에서 근무하셨는데 회사 업무가 빡세지기 시작했다고 하셨어요.
'한도컴퓨터'라는 회사는 한글카드로 유명한 회사였습니다. 당시는 PC의 OS가 윈도우나 리눅스가 아닌 DOS였습니다. DOS는 기본적으로 영어만 가능했고 한글을 쓰려면 소프트웨어적으로 특정 어플에서만 구현되던가(한글 같은 워드프로세서가 그랬죠. 그래서 한글 저장시에 보면 KSSM, KS5601이라는 텍스트와 한글 HWP는 다른 저장방식이었습니다) 한도에서 나온 [도깨비] 라는 카드를 슬롯에 장착하고 메인 메모리에 DKB4(1990년대 초반의 버전이 4버전이었습니다)를 띄워놓고 특정 명령어키로 한글을 억지로 구현시켜야 했습니다.
물론 윈도우3.0, 3.1의 한글화 버전이 나오고 OS가 WINDOWS95가 나오면서 현재와 같은 GUI식으로 바뀌며 도깨비5 버전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만. 이때 jjeowl정지은 누님은 한도에서 스프레드시트(엑셀 프로그램이라 생각하심 됨)개발을 하고 계셨었는데 이 부분 개발관련으로 난항을 겪고 있던 것으로 압니다.
이 '한도컴퓨터'는 지금도 있는 회사입니다.
어찌되었던 jjeowl정지은 누님 이후에 ToiEtMoi문선희 님이 후임자로 지원하셨어요.
이분도 나름 대단했던 분입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 계셨었는데 이때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에 자원봉사를 스스로 나서셨던 분이었어요. 근데 그건 모종의 이유로 중간에 그만두셔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풀겠습니다. 관련해서 문선희님이 대한민국 최초로 행한 건이 있습니다.
앞서 '하이텔 축구동호회는 한국 축구문화와 인터넷 문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문장이 있었죠. 그 기여중에서 ToiEtMoi문선희님의 활약이 있었습니다. 이건 추후 글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튼 하이텔 파업 기간동안에 이런 일들이 계속되다보니 많이 지쳐있는 상황에서 김신기님의 이 제안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홍보를 크게 해 보자는 제안과 함께 곧 연락이 갈거라고 해 주셨습니다.
어떤 일일까 했는데 일주일 정도 뒤에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스포츠서울의 서병기 기자입니다. 양원석씨이신가요?"
김신기 편집장님이 스포츠서울의 서병기 기자에게 소개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스포츠신문은 전통의 일간스포츠, 혁신의 스포츠서울, 신흥 스포츠조선 이렇게 3개 체제였습니다. 이중 한군데에서 전화가 오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만나뵙게로 했습니다.
"서병기 기자요? 그분 연예부 기자 아닌가요?" 라고 물으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 맞습니다. 그분 맞아요.
이때는 축구부에 계셨고 이후에 사회부로 옮기신 뒤에 스포츠서울에서 다른 신문사로 이직하시면서 연예부 대기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때는 축구부 기자셨어요.
당시 스포츠서울은 서울시청 옆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등포로 이전했습니다만 당시는 집에서도 가까운 편이고 한번에 가는 버스도 있어서 바로 달려갔습니다.
서병기 기자님은 바로 취재를 하셨습니다. 창립일, 현재 회원수, 그리고 어떤 뜻으로 생겼는가, 향후 운영계획은 어떠한가 등을 물어보셨습니다. 다 답변해 드렸죠.
운영진을 다 모을수 있는지를 여쭤보셨습니다. 그래서 내일 답변드린다고 하고 그날 저녁에 운영진들 집에 다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스포츠서울에 모였습니다.
서병기 기자님께서는 스포츠서울 앞의 화단에서 사진을 찍은 뒤에 최종 기사를 컨펌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SNS를 통해 가끔가다 소식을 교류하는 김덕기 당시 축구부 팀장님께 절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후 김덕기 팀장님은 하이텔 축구동에서 들고 오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셨습니다.
이 덕분에 여러분과 저의 축구에 대한 여러 기억들은 더 늘어나게 됩니다. 이건 이후에 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93년 6월 22일.
스포츠서울에 '하이텔 축구동호회' 기사가 2단인가 3단짜리로 저 포함한 운영진 4명의 사진을 포함해서 나왔습니다. 하이텔 동호회 사상 처음으로 언론에 기사 나간 겁니다.
하이텔 내에서 최고로 크다는 OS동호회도 컴퓨터쪽에서 '인용기사'로 동호회의 유명인인 송세엽 회계사님이 많이 언급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동호회 자체로는 처음인 일이었습니다.
전 이 신문 들고 하이텔 본사에 또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