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들어와서 하이텔 축구동이 커졌냐...면 그건 아닙니다. 당시 PC통신은 지금의 인터넷과 완전 달랐어요. PC통신 없으면 살아가는데 힘든 상황이 아닌 시대죠. 정말 하고싶은 사람만 하는 거였습니다.
이전 글에 말했지만 전화회선 사용해서 하던지라 전화비가 많이 들었습니다. ISDN 서비스를 신청해서 할수도 있었지만 이건 이 서비스 아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었고 14400bps라는 느린 속도도 제대로 안나오는 거라서 참 애매했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다보니 동호회는 그리 커지지 않았습니다.
1995년 3월경으로 기억합니다. 하이텔 축구동에서 온라인 활동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앞에 말한 축구팀에서 활동하던 박중현 형이 채팅으로 저보고 만나자고 했습니다. 이때 보통 만나는 장소는 동대문운동장에서 많이 만났어요. 어디 번화가나 카페거리 보다는 동대문이 서로 만나기 편했으니까요.
대화의 내용은 대강 정리하자면 이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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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석아 우리 축구팀 하나 응원하는게 어때?"
중현형의 그 말에 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 아니 우리가 독립적이고 어디 소속된 것도 아닌데 어느 한팀 응원을 하자고요?
"서양애들 응원하는거 봐봐 우리도 그렇게 함 해보고 싶지 않냐?"
- 그렇긴 한데 그게 지금 될까요? 몇명이나 호응할까...
"함 해보자. 지금 생각은 유공팀 접촉해 보려고 하고 있어"
- 잉? 거기 비인기팀인데...구단 운영도 별루 아녀요?
"그러니까 접촉해보자는 거지. 일화는 박종환 팬들이 많잖아. 그리고 LG는 서울 말고도 다른데서 경기 많이 하니까... 그리고 유공은 비인기팀이니까 응원한다고 가면 우리 도와줄 가능성이 높아"
- 아...전 모르겠습니다. 일단 전 여기에서는 빠지겠습니다. 형님이 접촉해서 진행하신 뒤에 알려주세요.
(이 대화에서 "유공이 우릴 도와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은, 최근 이야기 되는 서포터 역사 이야기에서 '구단의 지원을 받았으니 서포터가 아니다'는 이야기를 촉발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그대로 씁니다. 유공 이후 생긴 다른 구단 서포터들도 대부분 구단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지금 현재도 서포터가 없는 구단도 있을 것입니다. 구단 지원에 대한 사례는 앞으로 더 언급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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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선 애매한 부분이었습니다. 여러 오프모임, 경기장 가서 보는 사람들끼리 유럽에서 하는 경기들을 보면서 봤던 여러 응원들을 부러워했고 나도 함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이야기를 서로 하곤 했었습니다.
거기다 1994월드컵의 아시아 지역예선을 보면서 일본 응원단을 본건 충격이었습니다. 일본 응원단에 대한 이야기도 게시판에서 많이 나눴습니다. 거기다 1994월드컵에서 축구강국의 팬들이 보여준 응원들...그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중현형의 제안에 대해선 '아 해보고 싶긴 한데'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런데 아예 조직적으로 모여서 어느 한팀을 그렇게 응원해 보자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직접 움직이기엔 잘못하면 PC통신 안에서의 여론의 뭇매를 맞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뭔가 잘못되면 이야기 엄청 터지는게 이런 넷의 진리니까요.
거기다 동호회 운영을 하면서도 축구팀도(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연세대에서 직접 공을 차는 FC2002팀이요.) 아주 가끔가다 갔을 뿐이지 적극적으로 참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저 자체가 괜히 어디 하나 편들면 곤란하다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당시 하이텔에서는 한 분야에서 여러 동호회들이 난립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OS동호회에서 '윈도우즈 동호회'가 분리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어요. 공식적으로 OS가 아니었던 [윈도우3.X] 시대였는데도 OS동호회에서 따로 분리되는걸로 말이 많았고(윈도우즈95 발매 전입니다!) 게임관련동호회도 결국 여러 분야별로 각각 동호회가 나눠지고 할 때 말들이 좀 있었죠. 고개동(고전게임동호회) 외에도 시뮬동(시뮬레이션게임동호회), RPG동(RPG게임동호회) 등으로 계속 나눠지던걸 보면서 전 회장으로서 중심 잡아놓고 있어야 한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진행은 중현형이 진행하기로는 하고 저는 여기서 일단 한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중현형은 그러자고 하시고 진행에 들어갔습니다. 1995시즌이 시작한 뒤 얼마되지 않았던 때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응원해 보겠다고 오실 분 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유공 경기응원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적극적인 참여를 안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회사를 다녔는데 당시 거주하던 서울에서 직장이 있는 부천을 왔다갔다 하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춘의역 가다 보이는 메르세데스벤츠 부천전시장 근처에 있던 '낫소'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낫소는 현재 고양, 벽제쪽에 있지만 이땐 부천에 있었습니다. 법정관리 받던 때였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매장 근처의 주유소 뒤에 '낫소' 있던거 아는 분이면 진짜 부천에서 오래 사신 분입니다.
제가 당시에는 서울에 살고 있어서 '저녀석 부천에 무슨 연고가 있다고 부천으로 흘러간거냐!'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특히 모 팀 팬들이 뒤에서 그걸로 씹어댄거 다 압니다) 부천에 이렇게 연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제가 낫소에 입사한 이유가 '축구관련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 때문이었지요. 네, 축구공 만드는 회사가 제 첫 직장이었습니다. 거기다 이 때엔 낫소 안에 여자축구팀도 있어서 여자축구팀과 회사 직원과 연습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저는 축구 때문에 부천에 연을 맺었고 그 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짜 유공. SK가 축구팀 연고를 부천으로 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995년에만 해도 토요일에도 오전 근무를 해야 하던 '주6일 근무제'를 하던 때입니다. 이렇게 서울과 부천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결국 간염 걸려서 회사를 그만둬야 했는데 그때가 이 무렵과 겹쳤습니다.
'하이텔 축구동'시삽이라는 대표직을 맡고 있긴 하지만 회원으로서 참여할수야 있지만 회장이 어느 소모임(이땐 동호회 밑에는 '소모임'이라는 형태로 여러 모임들이 있었습니다. 유공축구팀 응원하는 곳도 이런 '소모임' 형태로 게시판 활동을 허락했습니다)에 속해 있으면 문제된다는 제 시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저 자신이 주말에 축구장 직접갈만한 체력이 안되었습니다.
결국 1995년 여름 전에 낫소를 퇴사했습니다. 이후에도 바로 유공팀 응원에 참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철 지나서 가을 접어들 무렵부터 동대문 응원에 저도 참가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무렵 제가 하이텔 축구동 대표시삽을 그만뒀기 때문입니다.
2년간 맡았던 축구동 대표시삽을 관두니 홀가분했습니다. 맨 처음 sports란에서 활동할 때보다 대표시삽을 하니 제 글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잘못하면 제 글이 '하이텔 축구동호회'의 입장을 대표할수도 있다는 경우를 제법 겪었습니다. 인용되서 '이게 공식 입장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거 해명도 쉽지 않더군요. 나름 스트레스였습니다.
이후 응원관련뿐 아니라 여러 운영 문제를 놓고 다른 회원분들과도 분쟁도 생기고 했습니다. 회사도 관두고 그 이후 제가 신경쓴 것은 'PC카페 칸타타' 관련 부분이었습니다. 이때 제가 자주 갔던 '칸타타' 라는 대학로 로타리에 있던 카페의 인수 관련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문제도 생기고 하다보니 결국 저로선 하이텔축구동호회의 여러 발전부분으로는 미흡하다는 축구동 회원분들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분쟁은 결국 저를 비난하던 분들(대부분이 FC2002축구팀에서 뛰는 분들이었습니다)과 만나서 이야기를 했고 제가 대표시삽 을 사임하고 다른 새로운 대표시삽을 뽑기로 했습니다.
2대 대표시삽은 전동표님이 선출되었습니다.
'하이텔 축구동호회 대표'의 자리에서 내려오니 경기장에 갈 여유가 생겼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에 가서 그냥 곁에서 보기만 하고 단순히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스탠드 앞에서 북도 잡아보고 같이 1열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쳐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그냥 속시원하더군요. 그렇게 경기에 빠져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995년 시즌이 끝났습니다.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낫소..방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