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sports 게시판은 [축구동]이라는 말머리를 쓰는 분들이 앞서 발기인 신청해 준 30명을 넘었습니다. 굳이 제한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하이텔에 축구동호회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아직은 없지만 3월에 신청 예정이다 올해 상반기 안으로 만들어진다. 그때까지는 여기서 [축구동] 말머리 붙이고 활동하시면 된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야구동도 같이 이런 활동을 하니 몇페이지에 걸쳐(한페이지에 글은 보통 20-25개 올라가는 것으로 기억하네요) [축구동] 또는 [야구동]이라는 글만 있는 거였습니다.
거기다 이제 시즌 시작되니 당연히 관련 글들은 많아졌죠.
학기도 시작했습니다.
전 졸업반이었고 다행히 졸업논문은 없었습니다. 학교생활은 조금 소홀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낮에는 수업하고 밤에는 집에와서 PC통신으로 게시판 보고 하는 일을 계속하다보니...
그래서 집에서 혼나기까지 했습니다.
전화비가 15만원 나왔다는 겁니다.
당시 PC통신은 전화선을 사용했고 모뎀 속도는 2400bps 였습니다. 이거 속도 지금으로 따지자면 지금은 MB를 넘어 GB급으로 가지만 이건 KB급인 겁니다. 2KB. 아니 정확히는 0.2KB급이라 해야 할까요?
당시 PC통신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글자 타이핑하는 식으로 페이지 하나 열면 한줄한줄 나오거나 운 좋으면 몇줄 나오거나 하던 때였고 1Mb 짜리 파일 하나 받는데 시간 단위가 걸리던 때였습니다.
당시 대항해시대 1편 디스크 세장짜리 정확히는 2D 디스크 세장이니까 1Mb도 안되는 용량 받는데 두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 전화요금으로 나왔습니다.
'스티븐 레비'의 저서 '해커'라는 거 보면 이 전화비 아끼기 위해 '블루 박스' 라는 전화해킹 기계 만드는 이야기가 꽤 나옵니다. 이 당시 PC통신 해 본 사람중 전화비 10만원 이상 안내봤다 하면 진짜 라이트 유저 인정하겠습니다. 나중엔 월정액제가 나오지만 그땐 그런거 없던 때였습니다.
공중전화 3분에 20원 할 때 전화요금 15만원은 일반 가정에선 충격적이었죠. 엄청 혼났지만 그 다음달에 줄여봤자 5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이건 결국 정액제로 바꾸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결국 전 나중에 학교 신관이 완성되고 K-NET 동아리가 개설되면서 학교 터미널실을 사용하기 전까진 비용 낮추지 못했습니다.
(이 터미널 실 사용으로 인해 진짜 또 다른 스토리가 열리게 되는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음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온라인 활동을 하던 어느 토요일.
하이텔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호회 접수를 해 준 분께서 전화를 해 주셨어요. 그때만 해도 전 학생이었던지라 토요일 오전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1990년대였기에 토요일에도 오전근무를 하던 시절이었지요.
"원석님, 지금 sports 게시판에 대한 불만 접수가 많습니다"
> 에? 무슨 일일까요?
"아시지만 지금 축구동, 야구동 말머리로 쓰는 글이 너무 많아서요. 여기가 동호회 준비 게시판이냐. 일반 게시판에서 무슨 동호회 활동이냐는 불만이 계속 접수되고 있습니다."
> 아...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게시판에서 활동하셔야겠습니다."
> 어느 게시판에서 활동하라는 건가요?
"sports 게시판이 아닌 다른 축구동호회의 목적에 맞는 게시판에서 활동하셔야겠습니다"
> 그러니까 어디서 활동해야 하냐고요?
"알아서 찾아보셔야죠"
전화 통화 끝난 뒤에 진짜 막막했습니다. 너무 글이 많아지긴 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대처를 안한건 사실이죠.
일단 야구동에서도 관련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글 자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글을 올렸지요 "[축구동] 말머리 사용해서 글 올리는 것을 당분간 자제해 주세요"
하고 현재 상황에 대한 썰을 풀었고 운영진들이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james008 양현덕님은 바로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해결방법은 "기존 동호회의 게시판 하나를 빌린다" 는 거였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라고 물어보았죠.
당시는 게시판 숫자는 기본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동호회 활동이 활발해야 게시판을 증설해 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동호회들 게시판 하나하나는 아주 소중한 자산인데 그중 하나를 동호회 준비하는 단체가 통으로 혼자 쓴다? 이해가 안갔습니다.
"7번 게시판 있잖아요. 그건 동호회 자율로 메뉴 변경 가능해요"
어??? 그런 방법이 있었어???
당시 하이텔 동호회 게시판은 1번부터 6번까지는 모든 동호회가 고정이었습니다.
1번 공지사항
2번 회원메뉴 < 가입신청 하는 곳.(운영진들은 여기 들어가면 운영진메뉴가 있었습니다)
3번 채팅방
4번 자료실
5번
6번 자유게시판
7번 서브게시판
음 오래되서 5번 게시판의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중 하나는 자유게시판이었습니다.
이후 8번부터 동호회별로 각자의 카테고리를 구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5번 서브게시판의 경우 다섯개의 게시판을 동호회에서 스스로 만들어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다섯개의 게시판을 다 쓰지 않는 동호회들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james008 양현덕님이 케텔때부터 활동했던 분이기 때문에 초보인 저보다는 이런 부분을 확실히 알고 계셨습니다.
빈 동호회에 대한 섭외도 맡아주기로 하셨습니다. 큰 위기를 넘겼구나 싶었습니다.
하이텔 축구동과 야구동은 이로 인해 '게시판 더부살이 시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축구동은 [고전게임동호회] 의 게시판을 하나 빌릴 수 있었습니다.
축구동을 만드는데엔 james008 양현덕님의 공이 절대적입니다. 제가 그래서 어디가서 '한국 최초의 온라인 축구동호회의 초대 대표' 라는 말을 할 때 꼭 붙이는 말이 "아닙니다 초대는 양현덕님이고 전 2대입니다. 다만 제가 대표일 때 정식 오픈이 되었습니다" 입니다.
역사는 정확히 기록되어야 하고 반드시 제대로 전달되어야죠. 전 그래서 초대대표라고 안합니다. 전 2대 대표입니다.
야구동호회는 당시 막 생긴 '바이러스 동호회'에 게시판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두어달 뒤 야구동은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유는 '바이러스 동호회'의 폐쇠 때문이었습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것은 어찌 보면 PC의 시스템을 제대로 건드리는 것이다보니 어찌 보면 지금의 해커들의 놀-이터에 가까왔던 거죠. 그러다보니 동호회에서의 윤리 문제가 거론되며 바이러스 동호회는 폐쇠조치가 이뤄지게 됩니다. 그런 자료들이 꽤 올라왔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고전게임동호회 일명 '고게동'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고전게임동호회 대표시삽 이순화님은 게시판 오픈 공지와 함께 축하글을 올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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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게임 (k2cgame )
열심히 활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05/31 23:42 14 line
안녕하세요 제2대 대표시삽 이순화 입니다.
우리동호회가 축구동을 위해 한 게시판을 개설할수 있는
사실에 매우 가슴이 뿌듯하고 평소 저도 이 축구동 정회원
인 만큼 저도 열심히 활동 하겠슈구.
이 축구동이 정식 동호회로 발족 되실대가지 이란을 재미 있게
또 진실되게 운영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제목에 하이텔 축구동호회 소모임터라고 했는데
괜찮으신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축하드리며 열심히 활동해 주시고 게시판 정리를 잘해주시기 바랍니다
.
== 시삽 이순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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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이날 고전게임 게시판의 하나를 빌려서 드디어 정식 동호회가 되기 전까지의 '더부살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실질적인 첫 글은 6월1일부터였습니다. 이순화님이 공지를 23시42분에 올린 것도 그 시간대에 올려서 첫번째 공지글인 '게시판 용도'를 쓰신 것입니다. 바로 뒷글을 쓸수 있었지만 자제시키고 정확히 6월1일 00:01분에 첫글을 올렸습니다.
1993년 6월 1일.
이때가 바로 한국 최초의 온라인 축구동호회가 만들어 진 날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3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처음 글을 쓰려는데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고 뭐라 해야 할지 잘 기억도 안나고 어쨌던 처음으로 '축구동'이라는 말머리를 떼고 글을 써야겠는데 뭐라 썼는지도 기억도 안날 정도로 흥분했었습니다.
없어질지도 몰랐던 상황에서 더부살이라 하더라도 다른 스포츠와 섞이지 않는 온전히 축구이야기만 할 수 있는 게시판이 생겼다!
감격스러웠습니다. 이게 하이텔 축구동의 시작이었습니다.
93년도면 제가 태어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