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즈음 해서 하이텔 본사에 한번 들러야 했습니다.
이후에는 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새로 만들어진 동호회 대표들에게는 '교육'이 있었거든요.
하이텔의 메인 게시판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이텔 시스템의 일부의 글(컨텐츠)에 대해 [삭제] 권한이 있던 만큼 저작권에 대한 간단한 교육과 동호회 운영을 위한 여러 게시판 명령어. 운영메뉴에 대한 안내 게시판 글의 삭제명령, 게시판 이름 바꾸기 등에 대한 것들에 대한 짧은 교육이었습니다.
부족한 교육일지 몰라도 새로 만들어지는 동호회 대표들과의 잠깐이지만 얼굴 마주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고 해서 케텔 시절부터 계속해서 있던 교육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이텔 축구동이 생긴 1993년 9월을 계기로 이 교육은 없어졌습니다.
최후의 교육이었죠.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나중에 알고보니 '소모임' 서비스의 신설과 동호회 개설이 쉬워지면서였습니다.
동호회 개설이 이전처럼 연 2회가 아닌 매월 열게 되었고 이와 함께 '소모임' 이라는 서비스가 열리게 되서 너무 많은 게시판들이 열려버리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된 겁니다.
제가 교육 받을 때만 해도 20여명밖에 안될 정도로 '동호회 개설' 이라는 것 자체가 당시 빡셌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서너번 '빠꾸'당한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한방에 뚫었던 겁니다. 분명 축구와 야구가 인기있는 스포츠인데도 오레된 케텔에서도 동호회가 없던게 의아했었는데 이때야 알았어요. 그만큼 케텔-하이텔에서 동호회 하나 만드는게 대단한 거였습니다.
그리고 공지된 개설일 00시.
sysop ID로 로그인을 했습니다.
ID : k2soccer
역사적인, 이 나라 최초의 온라인 축구동호회의 운영자 아이디입니다.
여러 통신사별로 이런 '시삽 ID'는 규칙이 있었고 일반인들은 절대 불허되는 ID였습니다.
하이텔은 k2로 시작되는 아이디가 시삽 아이디였고 후에 만들어지는 나우누리는 now로 시작되는 아이디가 시삽 아이디었습니다.
로그인한 뒤 나온 명령어 커서에 "go soccer"라는 '하이텔 축구동'으로 가는 명령으를 입력했습니다.
축구동호회의 하이텔 고유 인덱스 즉 이름은 soccer 이었습니다. 직관적으로 아시겠죠? 바로 soccer로 가라는 명령어입니다.
지금과 달리 2400bps라는 엄청 느린 속도의 모뎀이었기에 하이텔에 제출했던 ASCII 코드로 작성된 첫 화면이 한방에 안나오고 몇줄몇줄씩 나왔습니다.
몇초 지나자 무미건조했고, TEXT ART 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이텔 축구동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글이 뜨자마자...
진짜 잠시 멍하니 있었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엔터를 한번 더 누르니 나온 게시판 메뉴 14개를 그냥 보고만 있었어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지금 기억도 안납니다. 그냥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났었거든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진짜 모르겠습니다. 그냥 힘들었던 일, 포기할까 했던 일,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일들이 한꺼번에 나면서 와르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모양이고 그래서 머리가 멈췄던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뒤인지 얼마나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각 게시판에 게시판 용도에 대한 공지를 올리고 회원가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픈일에 약 70여명의 회원가입처리를 했습니다. 한분한분의 아이디를 보면서 그분들이 sports 게시판에서 해 주셨던 여러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30여명의 발기인분들이 모였지만 동호회 접수가 지연되면서 '일단 발기인 숫자를 더 늘리자' 해서 모인 발기인 숫자는 최종 120명이었습니다. 이분들이 오픈 첫날 다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테니 한분두분 더 들어오겠지 하며 돌아봤습니다.
새벽 두시쯤 잘수 있겠지 하는 생각은 제가 잘못 생각한 거였습니다.
새벽 네시도 금새 지났습니다. 그냥 밤을 새고 다음날 학교로 갔습니다.
120명이라는 숫자가 작지만 결코 작은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앞서 살짝 이야기 드렸지만 PC통신을 하려면 월사용료 외에도 막대한 전화비를 내야 했던 때입니다.
그리고 이 PC통신이란 것이 지금의 인터넷과 다르게 일상 생활과 밀접한 부분은...없었습니다.
진짜 PC나 컴퓨터 관련된 업종, 전공자들도 별로 사용 안했어요. 당장 저만해도 컴퓨터공학과(당시엔 전산기공이라 불렀죠) 출신인데 졸업할 때 과인원 50명중에 PC통신 하는 사람이 네명밖에 없었어요...-_-; 옆의 소프트웨어과도 비슷한 비율이었습니다. 100명 넘는 과에서 10명도 안되는...그것도 컴퓨터 전공이라는 과에서 이모양이라는게 믿어지십니까? 당시 PC라는 물건과 '통신' 이라는 것은 이런 거였습니다.
그럼에도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sports 게시판에 가셔서 축구동호회 개설에 대한 글을 써 주시고 축구동 게시판 이곳저곳에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뿌듯했죠. 서병기 기자님에게도 알려드렸습니다. 바로 그날 짧은 기사를 스포츠서울에 올려주셨어요.
이제 시작이다 하고 게시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뭐 그래봐야 하루에 글 많이 올라오는 날에 올라오는 글은 20-30개 정도였지만요.
앞으로 펼쳐질 일이 어떤 거인지도 모르고 그냥 축구이야기 할 게시판 생겼고 축구장에 혼자 안가도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온라인 축구동호회였습니다.
그때 시삽 아이디가 'k2soccer'여서 부천FC가 K2리그에 있는 것 아닙니까? 원석님이 뻘리 K1으로 올려 놓으세요! 그리고 연도 표기 감사합니다. 1993년 개설이군요. 계속 부탁드리고요. "멍하니 서있고 눈물이 흐르고" 오버 아닙니까? ㅎㅎㅎ
그리고 당시 PC통신은 전화비 신경 안 쓰는 있는 사람들, 일단 집에 PC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DOS 정도는 다루고 명령어 입력해서 사용할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어쩌다 정모 나가면 정말 다양한 분야의 훌륭한 친구, 선배 사귈 수 있었던 보고였던 것 같습니다. 만나서 사귀는 분들도 많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