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SK 시절.
장비 관리사로 활동하셨던 김요한님은
현재 소모임 아이레즈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최고 서포터 헤르메스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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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말하지만 그 시기는 정말 힘들었다. 22경기, 무려 22경기다. 개막 이후 5개월이다. 그동안 승리가 무엇인지 몰랐다. 도대체 경기에서 이기면 라커룸이 어떤 분위기가 되나 궁금할 정도였다.
이런 나에게 선수들이 위로를 했던 적이 있었다. 아니 사과라는 표현이 더 맞을까.
울산과의 두번째 원정경기에서 우린 맥없이 무너졌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단 미팅을 갖을때 나는 복도에 나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선수들은 그당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부천서포터 중 누가 이사실을 알까. 선수들은 하루 3번의 정기훈련과 개인훈련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소화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 나로선 어떤 수를 써도 승리하지 못하는 그들이 안쓰럽고 불쌍했으며 또 속이 터졌다.
고참선수들이 “오랜만에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했고 후배 선수들은 “대학때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다.
더구나 나를 슬프게 한것은 한없이 우리에게 불리한 심판판정이었다. 2003년도 부천은 페어플레이상을 받아도될 정도였다. 물론 훗날 남기일의 전남X먹어 세러모니 사건과 FA컵 4강전 심판항의 사건 등도 있었지만 경기중에 드러누워 고의로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비열한 반칙을 하는 선수는 없었다. 바보같을 정도였다.
그런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이 너무도 불쌍했다.
선수들이 머리를 깎았던 것은 기억이 맞다면 그 이전이었다. 윤중희는 정말 멋있었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냈다. 맥가이버 머리를 했던 안승인, 윤정춘도 머리를 잘랐다. 곱슬머리에 파마까지 했던 김한윤도 스포츠형 머리로 완전히 잘라냈다. 이성재도, 신승호도, 김기형도, 박성철도, 이동근도. 그당시 하재훈 감독 이하 모든 코칭스텝과 선수단이 머리를 잘랐다. 빡빡머리를 한 선수도 있었다. 나도 그동안 ‘갤러리정’이라는 오명을 씌워준 긴머리를 잘랐다. 단호한 결의를 대변하듯 선수단 전체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데 그 분위기를 확 깨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샤리다.
선수단 전체가 샤워를 하고 있는데 샤리가 “나는 머리는 이미 짧은데 거기(...)털이라도 밀어야 하나?”라며 농담을 해 한참 심각하던 선수들이 배꼽을 잡던 기억도 난다.
샤리는 정말 재미있는 선수였다. 남미사람 특유의 유쾌함은 물론이고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마구 뒤섞어 뭔가 농담을 해대는데 동료들이 그게 무슨 얘기인지 다 알아들을 정도로 표현력이 풍부했다. 특히 짱구만화책을 보고 짱구처럼 그곳(...)에 코끼리를 그려 샤워장에 나타났을때는 그야말로 웃음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어느날 샤리는 클럽하우스 내 사우나실 바닥에 새까맣게 더렵혀진 수건을 들고 다보와 제임스에게 뭐라뭐라 장난스런 항의를 했다. 이성재 선수도 어디선가 시커먼 먼지가 묻은 수건을 가져와 “다보! 제임스! 너네가 얼굴 닦았지?”라고 농담을 해 정말이지 허리가 휘어지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놀림을 당한 다보, 제임스도 눈물나게 웃었지만 점잖고 과묵하던 보리스가 바닥에 OTL 모양으로 엎드려 웃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팀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는 샤리와 이성재였다.
샤리는 한국음식도 열심히 잘 먹었고 개인기보다는 조직력을 강조하는 하재훈 감독 말을 잘 따랐던 것 같다. 연습때 일부러 보리스와 되지도 않는 헤딩경합을 하기도 하고 유니폼 팬츠를 슬쩍 내려놓는 귀여운(?)반칙을 곧잘 쓰곤 했다.
그런 샤리를 보리스는 유난히 귀여워했다. 그닥 초A급 활약은 못했지만 선수층이 얇은 부천에게 큰 힘이 됐던 것은 사실이다.
헤어지던 날 내 뺨에 뽀뽀를 하며 “고맙습니다~형~~형~~”이라고 인사해 날 눈물짓게 했다....
프로선수들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일은 사실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빠따’나 훈계가 필요없는 어른들이고, 직장인이고, 프로다. 집안에선 가장이고 남편이고 애아빠다. 그리고 스스로가 상품이다.
그런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대외적으로 ‘우리가 부진하니 스스로 정신을 다잡기 위함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된다. 머리를 자르는 선수가 프로 1년차 막내라면 맘이 더 편안하다. 그런데 윤정춘, 이원식, 안승인 쯤 되는 짬밥이라면 그건 얘기가 달라진다.
“형, 머리 잘랐어요?”, “야, 머리는 왜 자르냐?”
경기장에서 만난 타 팀 후배선수나 동료, 선배선수들의 한마디한마디는 바로 자존심으로 연결된다. 자존심이고 뭐고 바닥에 떨어졌을 때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감봉, 벌금 등의 프로선수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아마추어적 방법을 택했다는 것은 정말 비장한 각오였다는 얘기다.
머리를 가닥가닥 땋았던 다보가 머리를 풀었다. 제임스는 자잘하게 있던 머리를 완전히 밀었다. 패트릭도 머리를 풀고 짧게했다. 외국인 선수까지 가세한 것은 드문일이다.
그런데 그 머리를 깎은 일 자체가 또 문제가 됐다.
서포터들의 야유가 쏟아진 것이다. 우리 부천 서포터들의.
비장한 맘으로 머리를 잘랐지만 결국 또 홈에서 패배. 그리고 이어진 홈 서포터들의 야유. 그리고 이원식의 항의. 얼른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는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서포터들은 나름의 아쉬움을 표현했고 머리를 깍은 비장한 맘을 몰라준다고 느낀 이원식은 그렇게 관중석으로 돌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정말로, 정말로 힘든 시간이었다.
선수단은 보통 대전 이하 원정경기는 대절한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이용한다. 나와 구단버스 기사 아저씨는 구단버스를 몰아 선수단이 도착할 공항으로 미리 내려간다. 대충 시간대는 잘 맞춘다. 당시 버스기사 아저씨는 (이름은 잊어버렸다) 유공 축구단 창단시절부터 그때까지 주욱 구단버스를 몰아오셨다. 그래서 구단의 역사, 선수들의 뒷얘기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심지어 원정경기를 가면 은퇴해 코칭스텝으로 있던 부천출신 선수들이나 신문선 해설위원까지 와서 인사를 할 정도였다. 조윤환 감독도, 최윤겸 감독도 그에게 와서 알은체를 하고 안부를 묻고는 했다.
선수단 버스를 모는 20여년 동안 단 한번도 사고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단, (하필이면 2003년에) 울산원정경기 당시 왠 (김여사가 모는)프라이드 하나랑 접촉사고를 냈던 것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레이서 였다. 전북 원정경기에서 패배한 이후 강성길(이 사람 이름을 떠올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단장이 화를 냈고 하루 더 자고 오는 것이 보통인데 폭우를 뚫고 인천으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선수를 태운 그 버스는 빗속과 밀리는 차량들을 뚫고 무려 3시간 안으로 숙소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나와 버스운전사 아저씨 둘이서만 그 큰 구단버스에 덩그러니 앉아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돌조각이 날아와 버스 앞유리에 상처를 낸 것이다. 나는 무척 놀랬는데 오히려 운전하시던 아저씨가 껄껄 웃었다.
“이런건 액땜이야. 좋게 생각해야지 뭐”
결과적으로 그건 나쁜기운을 미리 없애준 진짜 액땜이었다.
부산과의 원정경기에 앞서 액땜은 또 있었다.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은 알다시피 종합경기장으로 육상트랙이 있는 곳이다. 나는 경기전에는 슛 연습하는 공을 줍는 것이 임무였는데 공을 잡으러 가다가 육상트랙 앞의 스탠레스 분리턱을 잘못 밟아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머리가 쩡 할 만큼 아팠는데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임시로 선수들에게나 해주는 테이핑을 발목에 해줬다. 결과적으론 그것도 액땜 축에 속할 것 같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기억이 맞다면... 아이레즈 두 형님들. 조현진, 김형찬 형님과의 대화가 기억난다는 점이다. 내가 공을 줏으러 스탠드근처까지 갔을때 두 형님들이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 선수들의 컨디션과 분위기를 물어왔다. 나는 아주 좋다고 대답했다. 기억이 맞다면 바로 이 경기에서 그랬다.
부산에 도착한 우리는 여장을 풀었다. 22연속 무승이라는 무게가 무거웠지만 그래도 선수단의 분위기는 밝았다. 어느 누구도 ‘승리’에 대한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각오는 분명 남달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선수들은 그날저녁 전에없던 선수단 미팅을 가졌다. 선수들이 자청해 모인 것이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지만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2003년 7월26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괴물같이 커다란 그 경기장은 내가 알기론 최대로 큰 축구장이다. 부산의 야구 열기는 다들 잘 알것이다. 롯데의 팬들은 부천서포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난 오히려 ‘울트라스 정신’은 프로야구 롯데팬들이 제일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축구 열기는 전국 최하위였다. 당시 부천이 전국 최하위의 관중동원기록을 세우고 있었지만 아무리 눈대중으로 세어봐도 부천보다 많아보이지 않았다.
부산은 선발라인업에 이임생과 곽경근을 세웠다. 아, 부천의 옛 선수들. 부천만 만나면 이를 가는 그들. 결국 역시 부천출신 선수가 또다시 비수를 꽂는다. 전반 중반 곽경근의 어시스트로 외국인 선수가 선제골을 넣어버린것이다. 기록지를 보니 제이미라는 선수였다.
결국 전반전에 부천은 김기형을 빼고 남기일을 넣었으며 안승인을 빼고 이동근을 넣었다.
당시 주 공격수는 이종민과 이성재, 그리고 그렇게 공격수를 원하던 안승인 이었는데 별반 활약을 못했다.
1골을 지고 있었지만 전반이 끝난 라커룸의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좋았다기 보다는 의기소침하진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듯 싶다. 잔실수가 종종 있던 윤중희는 훌륭히 수비임무를 수행했고 김한윤 - 박민서 - 보리스의 수비라인도 적당했다.
그리고 후반 시작과 함께 열심히 몸을 풀던 이원식이 후반10분쯤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벤치의 격려를 받으며 이원식 콜이 울리며 그렇게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
이원식이 뛰어들기전 리저브로 있던 최현이 크게 외쳤다. “골 넣고 들어와!!!”
나도 속으로 외쳤다. 제발! 제발요! 제발 원식이형!! 제발...
그리고.
이원식은.
그 외침을 들었다.
그는.
1분만에
골을 넣었다.
아아 이원식.
아아 이원식...
샤리의 기가막힌 스루패스, 이원식은 골키퍼 오른쪽으로 뛰다가 갑자기 허리를 휙 돌리며 반대편 골대를 파고드는 슛을 날린 것이다. 오직 우리들만 부산아시아드경기장에서 그순간 괴성을 고래고래 지르고 뛰고 서로를 움켜잡고 껴안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난 발목이 접질린 것도 잊었다. 발 아픈것이 뭐 대수냐. 골이 들어갔는데. 골을 넣으러 간다고 윙크를 찡긋하고 전장에 나간 이원식이 보기좋게 1분만에 동점골을 엮었는데.
이원식을 골을 넣고 벤치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우리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하재훈 감독을 부둥켜안았다. 여지껏 한번도 기쁨의 세러모니를 하지 않던, 아니 2003시즌 내내 그럴 상황이 한번도 없었던 이원식이 드디어 환하게 웃으며, 포효하며 그렇게 한덩어리가 됐다.
그리고 다시 5분뒤.
이번엔 남기일의 스루패스를 받은 이원식이 상대 골키퍼 왼쪽으로 뛰다가 반대편 골대를 파고드는 슛을 날린다.
또다시 골.
원샷원킬. 단 두번의 슛이 골로 연결된 것이다. 우리는 눈이 튀어나오도록 소리를 질렀다. 뭐 어떠랴. 뭐가 어찌됐다는 것이 도대체 이순간 무슨 상관이 있으랴. 거기가 부산땅이고 뭐고 그게 다 뭐란 말인가. 부천이 역전골을 넣었다는데 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아마 우리는 그때 미쳤었던 것 같다. 부산경기장의 선수벤치는 본부석 앞쪽에 있었는데 거기에도 적지않은 수의 부산팬들이 앉아있었다. 난 그 시선조차 즐기면서 방방 뛰어다녔다. 몇 안되던 부천서포터들은 이미 미쳐있었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도 벤치주변을 뛰어다녔다.
난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러나 아직 아니야.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야. 라고 되뇌이면서도 어쨌든 그순간은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다. 우리가 역전골을 넣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이원식은 또다시 벤치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한 뒤 울먹이는 내 얼굴을 한번 스윽 쓰다듬고 지나갔다.
하재훈 감독은 그순간 재빨리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선수들의 정신을 번쩍 나게 하는 것은 감독의 고함소리다.
"진정하고! 수비! 수비! 제자리로 돌아가!"
그 이후부터 부천의 수비라인은 견고했다. 빠른 이원식의 발과 신예 이동근의 재치넘치는 플레이, 남기일의 뚝심좋은 플레이를 부산은 막기에만 급급했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후반40분이 되자 난 위장이 다 아팠다. 숨도 경기를 뛰는 선수들만큼이나 급하게 몰아쉬고 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긴장한 탓인데, 그때부터의 1분, 1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심지어 짜증도 났다. 한골 더 넣으면 편안하기라도 하잖아. 라며. 시간은 군대있을때보다 더 안갔다. 1분이 10년같았다.
그리고 심판의 휘슬.
부천은 그렇게 승리했다.
하재훈 감독은 벤치에 있던 사람들 모두와 악수했다.
난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선수들이 벗어놓은 땀냄새나는 운동복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 드디어 이겼다. 드디어.
최현은 “형 왜 울고그래?”하고 씩 웃는다.
이동남 팀장도 짐짓 태연한 척 “요한씨 울지마, 이제 한경기인데...”라고 말한다. 물론 1승으로 우승이나 한듯이 우는 건 좀 그렇긴 했다.
그러나 얼마나 기다린 승리인가. 얼마만에 보는 랄랄라 인가.
난 선수들이 승리의 의식인 랄랄라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때의 랄랄라 만큼 우렁찬 것은 이제껏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원식 선수는 “유니폼!”이라고 외치던 부천서포터 누군가에게 ‘하필이면 다시 채워넣기도 힘든’ 원정유니폼을 던져줬다. 그리고 웃통을 벗은채로 인터뷰를 했다. 솔직히 이원식이 유니폼을 벗어 던지는 순간, 나는 내 직업을 의식했다. 저걸 다시 받아와야 하나. 재고가 있던가. 결론적으로 이원식은 시즌내내 하절기 원정유니폼은 2벌에서 1벌로 줄었다.^^
이날 저녁식사 시간은 최고였다. 다들 낄낄거리며 즐겁게 식사했다. 이성재 선수가 “김요한! 너가 경기뛰었냐? 왜그리 많이 먹어?”하고 놀리는 것도 다 좋았다.
샤리와 다보는 계속 장난을 쳤고 과묵한 보리스도 선수들과 농담을 주고 받았다.
호텔 관계자들도 축하인사를 보내왔다.
난 이날 밤, 최현의 방에서 맥주에 회 한접시를 먹었다. 난 회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이날 최현과 먹은 회맛은 기가막혔다.
스포츠뉴스를 보고 또봤다. 축구관련기사는 모두 부천얘기가 톱뉴스였다. 지독한 무승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것이 주 뉴스였고 이원식의 그림같은 슛들이 계속 클로즈업됐다. 부산지역 뉴스에선 내가 우는 장면까지 나왔다. 대단히 창피했지만 그래도 승리는 기뻤다.
다음날 스포츠신문들도 대부분 ‘이원식 날다’, ‘부천 드디어 1승’, ‘이원식 원맨쇼’ 등으로 부천의 승리를 알렸다.
우리는 기본좋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일뿐이라며.
당시 부천의 대진표는 7월12일부터 8월2일까지가 울산-부산-울산-부산이었다. 부천은 이 기간동안 1승2무1패를 기록한다. 부산전 승리이후 다시 울산과 부산을 연이어 만났지만 모두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지지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경기들이다.
특히 부산전 원정승리 이후 바로 이어진 홈경기 부산전에는 9872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거기서 승리했으면 그야말로 최고였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2003시즌 K리그는 이제 후반부로 치닫는다. 후반부로 가면서 내 뇌리에 가장 크게 박혀있는 사람은 다보와 남기일이다. 특히 남기일은 ‘투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전남 X먹어 세러모니 사건도 그의 승부사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례다.
그리고 그의 승부사 기질은 이어진 8월6일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6편에 계속
장비 관리사로 활동하셨던 김요한님은
현재 소모임 아이레즈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최고 서포터 헤르메스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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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말하지만 그 시기는 정말 힘들었다. 22경기, 무려 22경기다. 개막 이후 5개월이다. 그동안 승리가 무엇인지 몰랐다. 도대체 경기에서 이기면 라커룸이 어떤 분위기가 되나 궁금할 정도였다.
이런 나에게 선수들이 위로를 했던 적이 있었다. 아니 사과라는 표현이 더 맞을까.
울산과의 두번째 원정경기에서 우린 맥없이 무너졌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단 미팅을 갖을때 나는 복도에 나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선수들은 그당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부천서포터 중 누가 이사실을 알까. 선수들은 하루 3번의 정기훈련과 개인훈련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소화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 나로선 어떤 수를 써도 승리하지 못하는 그들이 안쓰럽고 불쌍했으며 또 속이 터졌다.
고참선수들이 “오랜만에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했고 후배 선수들은 “대학때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다.
더구나 나를 슬프게 한것은 한없이 우리에게 불리한 심판판정이었다. 2003년도 부천은 페어플레이상을 받아도될 정도였다. 물론 훗날 남기일의 전남X먹어 세러모니 사건과 FA컵 4강전 심판항의 사건 등도 있었지만 경기중에 드러누워 고의로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비열한 반칙을 하는 선수는 없었다. 바보같을 정도였다.
그런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이 너무도 불쌍했다.
선수들이 머리를 깎았던 것은 기억이 맞다면 그 이전이었다. 윤중희는 정말 멋있었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냈다. 맥가이버 머리를 했던 안승인, 윤정춘도 머리를 잘랐다. 곱슬머리에 파마까지 했던 김한윤도 스포츠형 머리로 완전히 잘라냈다. 이성재도, 신승호도, 김기형도, 박성철도, 이동근도. 그당시 하재훈 감독 이하 모든 코칭스텝과 선수단이 머리를 잘랐다. 빡빡머리를 한 선수도 있었다. 나도 그동안 ‘갤러리정’이라는 오명을 씌워준 긴머리를 잘랐다. 단호한 결의를 대변하듯 선수단 전체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데 그 분위기를 확 깨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샤리다.
선수단 전체가 샤워를 하고 있는데 샤리가 “나는 머리는 이미 짧은데 거기(...)털이라도 밀어야 하나?”라며 농담을 해 한참 심각하던 선수들이 배꼽을 잡던 기억도 난다.
샤리는 정말 재미있는 선수였다. 남미사람 특유의 유쾌함은 물론이고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마구 뒤섞어 뭔가 농담을 해대는데 동료들이 그게 무슨 얘기인지 다 알아들을 정도로 표현력이 풍부했다. 특히 짱구만화책을 보고 짱구처럼 그곳(...)에 코끼리를 그려 샤워장에 나타났을때는 그야말로 웃음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어느날 샤리는 클럽하우스 내 사우나실 바닥에 새까맣게 더렵혀진 수건을 들고 다보와 제임스에게 뭐라뭐라 장난스런 항의를 했다. 이성재 선수도 어디선가 시커먼 먼지가 묻은 수건을 가져와 “다보! 제임스! 너네가 얼굴 닦았지?”라고 농담을 해 정말이지 허리가 휘어지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놀림을 당한 다보, 제임스도 눈물나게 웃었지만 점잖고 과묵하던 보리스가 바닥에 OTL 모양으로 엎드려 웃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팀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는 샤리와 이성재였다.
샤리는 한국음식도 열심히 잘 먹었고 개인기보다는 조직력을 강조하는 하재훈 감독 말을 잘 따랐던 것 같다. 연습때 일부러 보리스와 되지도 않는 헤딩경합을 하기도 하고 유니폼 팬츠를 슬쩍 내려놓는 귀여운(?)반칙을 곧잘 쓰곤 했다.
그런 샤리를 보리스는 유난히 귀여워했다. 그닥 초A급 활약은 못했지만 선수층이 얇은 부천에게 큰 힘이 됐던 것은 사실이다.
헤어지던 날 내 뺨에 뽀뽀를 하며 “고맙습니다~형~~형~~”이라고 인사해 날 눈물짓게 했다....
프로선수들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일은 사실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빠따’나 훈계가 필요없는 어른들이고, 직장인이고, 프로다. 집안에선 가장이고 남편이고 애아빠다. 그리고 스스로가 상품이다.
그런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대외적으로 ‘우리가 부진하니 스스로 정신을 다잡기 위함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된다. 머리를 자르는 선수가 프로 1년차 막내라면 맘이 더 편안하다. 그런데 윤정춘, 이원식, 안승인 쯤 되는 짬밥이라면 그건 얘기가 달라진다.
“형, 머리 잘랐어요?”, “야, 머리는 왜 자르냐?”
경기장에서 만난 타 팀 후배선수나 동료, 선배선수들의 한마디한마디는 바로 자존심으로 연결된다. 자존심이고 뭐고 바닥에 떨어졌을 때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감봉, 벌금 등의 프로선수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아마추어적 방법을 택했다는 것은 정말 비장한 각오였다는 얘기다.
머리를 가닥가닥 땋았던 다보가 머리를 풀었다. 제임스는 자잘하게 있던 머리를 완전히 밀었다. 패트릭도 머리를 풀고 짧게했다. 외국인 선수까지 가세한 것은 드문일이다.
그런데 그 머리를 깎은 일 자체가 또 문제가 됐다.
서포터들의 야유가 쏟아진 것이다. 우리 부천 서포터들의.
비장한 맘으로 머리를 잘랐지만 결국 또 홈에서 패배. 그리고 이어진 홈 서포터들의 야유. 그리고 이원식의 항의. 얼른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는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서포터들은 나름의 아쉬움을 표현했고 머리를 깍은 비장한 맘을 몰라준다고 느낀 이원식은 그렇게 관중석으로 돌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정말로, 정말로 힘든 시간이었다.
선수단은 보통 대전 이하 원정경기는 대절한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이용한다. 나와 구단버스 기사 아저씨는 구단버스를 몰아 선수단이 도착할 공항으로 미리 내려간다. 대충 시간대는 잘 맞춘다. 당시 버스기사 아저씨는 (이름은 잊어버렸다) 유공 축구단 창단시절부터 그때까지 주욱 구단버스를 몰아오셨다. 그래서 구단의 역사, 선수들의 뒷얘기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심지어 원정경기를 가면 은퇴해 코칭스텝으로 있던 부천출신 선수들이나 신문선 해설위원까지 와서 인사를 할 정도였다. 조윤환 감독도, 최윤겸 감독도 그에게 와서 알은체를 하고 안부를 묻고는 했다.
선수단 버스를 모는 20여년 동안 단 한번도 사고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단, (하필이면 2003년에) 울산원정경기 당시 왠 (김여사가 모는)프라이드 하나랑 접촉사고를 냈던 것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레이서 였다. 전북 원정경기에서 패배한 이후 강성길(이 사람 이름을 떠올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단장이 화를 냈고 하루 더 자고 오는 것이 보통인데 폭우를 뚫고 인천으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선수를 태운 그 버스는 빗속과 밀리는 차량들을 뚫고 무려 3시간 안으로 숙소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나와 버스운전사 아저씨 둘이서만 그 큰 구단버스에 덩그러니 앉아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돌조각이 날아와 버스 앞유리에 상처를 낸 것이다. 나는 무척 놀랬는데 오히려 운전하시던 아저씨가 껄껄 웃었다.
“이런건 액땜이야. 좋게 생각해야지 뭐”
결과적으로 그건 나쁜기운을 미리 없애준 진짜 액땜이었다.
부산과의 원정경기에 앞서 액땜은 또 있었다.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은 알다시피 종합경기장으로 육상트랙이 있는 곳이다. 나는 경기전에는 슛 연습하는 공을 줍는 것이 임무였는데 공을 잡으러 가다가 육상트랙 앞의 스탠레스 분리턱을 잘못 밟아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머리가 쩡 할 만큼 아팠는데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임시로 선수들에게나 해주는 테이핑을 발목에 해줬다. 결과적으론 그것도 액땜 축에 속할 것 같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기억이 맞다면... 아이레즈 두 형님들. 조현진, 김형찬 형님과의 대화가 기억난다는 점이다. 내가 공을 줏으러 스탠드근처까지 갔을때 두 형님들이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 선수들의 컨디션과 분위기를 물어왔다. 나는 아주 좋다고 대답했다. 기억이 맞다면 바로 이 경기에서 그랬다.
부산에 도착한 우리는 여장을 풀었다. 22연속 무승이라는 무게가 무거웠지만 그래도 선수단의 분위기는 밝았다. 어느 누구도 ‘승리’에 대한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각오는 분명 남달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선수들은 그날저녁 전에없던 선수단 미팅을 가졌다. 선수들이 자청해 모인 것이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지만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2003년 7월26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괴물같이 커다란 그 경기장은 내가 알기론 최대로 큰 축구장이다. 부산의 야구 열기는 다들 잘 알것이다. 롯데의 팬들은 부천서포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난 오히려 ‘울트라스 정신’은 프로야구 롯데팬들이 제일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축구 열기는 전국 최하위였다. 당시 부천이 전국 최하위의 관중동원기록을 세우고 있었지만 아무리 눈대중으로 세어봐도 부천보다 많아보이지 않았다.
부산은 선발라인업에 이임생과 곽경근을 세웠다. 아, 부천의 옛 선수들. 부천만 만나면 이를 가는 그들. 결국 역시 부천출신 선수가 또다시 비수를 꽂는다. 전반 중반 곽경근의 어시스트로 외국인 선수가 선제골을 넣어버린것이다. 기록지를 보니 제이미라는 선수였다.
결국 전반전에 부천은 김기형을 빼고 남기일을 넣었으며 안승인을 빼고 이동근을 넣었다.
당시 주 공격수는 이종민과 이성재, 그리고 그렇게 공격수를 원하던 안승인 이었는데 별반 활약을 못했다.
1골을 지고 있었지만 전반이 끝난 라커룸의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좋았다기 보다는 의기소침하진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듯 싶다. 잔실수가 종종 있던 윤중희는 훌륭히 수비임무를 수행했고 김한윤 - 박민서 - 보리스의 수비라인도 적당했다.
그리고 후반 시작과 함께 열심히 몸을 풀던 이원식이 후반10분쯤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벤치의 격려를 받으며 이원식 콜이 울리며 그렇게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
이원식이 뛰어들기전 리저브로 있던 최현이 크게 외쳤다. “골 넣고 들어와!!!”
나도 속으로 외쳤다. 제발! 제발요! 제발 원식이형!! 제발...
그리고.
이원식은.
그 외침을 들었다.
그는.
1분만에
골을 넣었다.
아아 이원식.
아아 이원식...
샤리의 기가막힌 스루패스, 이원식은 골키퍼 오른쪽으로 뛰다가 갑자기 허리를 휙 돌리며 반대편 골대를 파고드는 슛을 날린 것이다. 오직 우리들만 부산아시아드경기장에서 그순간 괴성을 고래고래 지르고 뛰고 서로를 움켜잡고 껴안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난 발목이 접질린 것도 잊었다. 발 아픈것이 뭐 대수냐. 골이 들어갔는데. 골을 넣으러 간다고 윙크를 찡긋하고 전장에 나간 이원식이 보기좋게 1분만에 동점골을 엮었는데.
이원식을 골을 넣고 벤치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우리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하재훈 감독을 부둥켜안았다. 여지껏 한번도 기쁨의 세러모니를 하지 않던, 아니 2003시즌 내내 그럴 상황이 한번도 없었던 이원식이 드디어 환하게 웃으며, 포효하며 그렇게 한덩어리가 됐다.
그리고 다시 5분뒤.
이번엔 남기일의 스루패스를 받은 이원식이 상대 골키퍼 왼쪽으로 뛰다가 반대편 골대를 파고드는 슛을 날린다.
또다시 골.
원샷원킬. 단 두번의 슛이 골로 연결된 것이다. 우리는 눈이 튀어나오도록 소리를 질렀다. 뭐 어떠랴. 뭐가 어찌됐다는 것이 도대체 이순간 무슨 상관이 있으랴. 거기가 부산땅이고 뭐고 그게 다 뭐란 말인가. 부천이 역전골을 넣었다는데 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아마 우리는 그때 미쳤었던 것 같다. 부산경기장의 선수벤치는 본부석 앞쪽에 있었는데 거기에도 적지않은 수의 부산팬들이 앉아있었다. 난 그 시선조차 즐기면서 방방 뛰어다녔다. 몇 안되던 부천서포터들은 이미 미쳐있었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도 벤치주변을 뛰어다녔다.
난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러나 아직 아니야.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야. 라고 되뇌이면서도 어쨌든 그순간은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다. 우리가 역전골을 넣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이원식은 또다시 벤치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한 뒤 울먹이는 내 얼굴을 한번 스윽 쓰다듬고 지나갔다.
하재훈 감독은 그순간 재빨리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선수들의 정신을 번쩍 나게 하는 것은 감독의 고함소리다.
"진정하고! 수비! 수비! 제자리로 돌아가!"
그 이후부터 부천의 수비라인은 견고했다. 빠른 이원식의 발과 신예 이동근의 재치넘치는 플레이, 남기일의 뚝심좋은 플레이를 부산은 막기에만 급급했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후반40분이 되자 난 위장이 다 아팠다. 숨도 경기를 뛰는 선수들만큼이나 급하게 몰아쉬고 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긴장한 탓인데, 그때부터의 1분, 1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심지어 짜증도 났다. 한골 더 넣으면 편안하기라도 하잖아. 라며. 시간은 군대있을때보다 더 안갔다. 1분이 10년같았다.
그리고 심판의 휘슬.
부천은 그렇게 승리했다.
하재훈 감독은 벤치에 있던 사람들 모두와 악수했다.
난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선수들이 벗어놓은 땀냄새나는 운동복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 드디어 이겼다. 드디어.
최현은 “형 왜 울고그래?”하고 씩 웃는다.
이동남 팀장도 짐짓 태연한 척 “요한씨 울지마, 이제 한경기인데...”라고 말한다. 물론 1승으로 우승이나 한듯이 우는 건 좀 그렇긴 했다.
그러나 얼마나 기다린 승리인가. 얼마만에 보는 랄랄라 인가.
난 선수들이 승리의 의식인 랄랄라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때의 랄랄라 만큼 우렁찬 것은 이제껏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원식 선수는 “유니폼!”이라고 외치던 부천서포터 누군가에게 ‘하필이면 다시 채워넣기도 힘든’ 원정유니폼을 던져줬다. 그리고 웃통을 벗은채로 인터뷰를 했다. 솔직히 이원식이 유니폼을 벗어 던지는 순간, 나는 내 직업을 의식했다. 저걸 다시 받아와야 하나. 재고가 있던가. 결론적으로 이원식은 시즌내내 하절기 원정유니폼은 2벌에서 1벌로 줄었다.^^
이날 저녁식사 시간은 최고였다. 다들 낄낄거리며 즐겁게 식사했다. 이성재 선수가 “김요한! 너가 경기뛰었냐? 왜그리 많이 먹어?”하고 놀리는 것도 다 좋았다.
샤리와 다보는 계속 장난을 쳤고 과묵한 보리스도 선수들과 농담을 주고 받았다.
호텔 관계자들도 축하인사를 보내왔다.
난 이날 밤, 최현의 방에서 맥주에 회 한접시를 먹었다. 난 회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이날 최현과 먹은 회맛은 기가막혔다.
스포츠뉴스를 보고 또봤다. 축구관련기사는 모두 부천얘기가 톱뉴스였다. 지독한 무승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것이 주 뉴스였고 이원식의 그림같은 슛들이 계속 클로즈업됐다. 부산지역 뉴스에선 내가 우는 장면까지 나왔다. 대단히 창피했지만 그래도 승리는 기뻤다.
다음날 스포츠신문들도 대부분 ‘이원식 날다’, ‘부천 드디어 1승’, ‘이원식 원맨쇼’ 등으로 부천의 승리를 알렸다.
우리는 기본좋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일뿐이라며.
당시 부천의 대진표는 7월12일부터 8월2일까지가 울산-부산-울산-부산이었다. 부천은 이 기간동안 1승2무1패를 기록한다. 부산전 승리이후 다시 울산과 부산을 연이어 만났지만 모두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지지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경기들이다.
특히 부산전 원정승리 이후 바로 이어진 홈경기 부산전에는 9872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거기서 승리했으면 그야말로 최고였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2003시즌 K리그는 이제 후반부로 치닫는다. 후반부로 가면서 내 뇌리에 가장 크게 박혀있는 사람은 다보와 남기일이다. 특히 남기일은 ‘투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전남 X먹어 세러모니 사건도 그의 승부사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례다.
그리고 그의 승부사 기질은 이어진 8월6일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6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