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축구장에 갈 때는 지금보다 더 많이 설렜습니다. 상대 팀과 전적, 과거 경기에서 있었던 분했던 상황, 오늘 경기의 의미 등을 되새기면서 꼭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지금보다 높았던 것 같습니다. 이임생, 윤정환, 윤정춘, 김기동, 이용발, 이을룡 등 많은 선수들이 팀에 오래 있기도 했고, 선수 하나하나에 대한 인지도나 집중도가 있어서 멀리서 실루엣만 봐도 "누구다"하고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우리 팀을 보면서 내가 이름과 얼굴을 매치할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되나. 어디서 어떤 경로로 우리 팀에 왔는지 아는 선수는 또 얼마나 되나하고 자문했을 때 나의 답은 "별로 없다"였습니다. 물론 대표급 선수들을 보유했던 예전 팀에 비해 선수들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도 많이 게을렀다고 생각하고 자책을 좀 했습니다.
약간 다른 결의 이야기인데, 2000년 전후로 외국 서포터 홈페이지를 돌며, 또는 가끔 외국 팬들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선수에 대한 강력한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였습니다. 사랑, 지지와 약간 다른 건데.. 관여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포터 상황에 맞게 의역을 한다면, "강한 애정에 기반한 비판적인 지지" 정도. 즉, 애정과 관심을 밑에 깔고 이를 표현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비판도 한다는 뜻일 것 같습니다.
물론 시작은 애정과 관심입니다. 2000년 즈음 우라와 레즈에 한 선수가 입단을 했는데, 우라와 레즈 홈페이지 1면에 붉은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저는 일본 싫어 합니다. 다만 분야별로 배울 점도 일부 있다고 생각하여 참고합니다). 그 선수가 최병찬이라고 칩시다.
"최병찬, 레즈에 온 것을 환영한다.
100% 풀 서포트를 약속한다"
우라와 팬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홈페이지 1면의 짧은 문장에 압도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선수 하나하나에 대한 집중과 관심이 결국 팀과 그 팀의 각 경기에 대한 관여도를 높이는 느낌입니다.
다시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 선수 하나하나 자료를 찾아보며 얼굴도 익히고 자라 온 과정도 보고 있습니다. 자료가 많지 않아 제한적이긴 합니다. 그리고 선수 관련 정보에는 내 개인 저작권이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다 기사나 위키 등을 베끼거나 퍼온 것입니다. 모르죠. 이렇게 정리하다보면 혹시 도움이 되는 조언이 한 줄이라도 있을 지도.. 선수 출신 선배들의 이야기와 다른 차원의 인사이트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축구선수 최병찬. 96년 생이면 28살인가요? 축구선수로는 승부를 걸어야 할 나이네요. 2018년에 255:1의 경쟁을 뚫고 성남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출발했다고 합니다. 제가 최병찬에 대해서 "여기서 이러고 있을 선수가 아니다"는 말을 했는데, 황인범과 유성중 1학년 때 1학년 춘계대회 준우승하고, 당시 주장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경험을 두고 한 말입니다. 최병찬과 황인범은 대전 시티즌에서 유망주로 특별관리 대상자였다는 글도 보이네요.
이후 중고등학교를 거쳐서 홍익대학교를 갔다면 엘리트 코스를 무난하게 걸었다고 봅니다. 성남 입단 과정을 보면 대학 때에도 좋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입단 테스트를 할 때 테스트 당시 퍼포먼스도 보지만, 이력서도 봅니다. 어떤 입단 테스트는 선수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절차일 수도 있습니다.
프로 입문까지 과정을 보면 한국 엘리트 축구의 중상의 위치에 있었고, 성남이라는 팀에 들어 갔으니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천으로 임대 이적에 이어서 완전 이적이 되었고, 상무에 다녀왔습니다.
여기까지 경력과 그간 경기장에서 모습을 볼 때 저는 최병찬이 잠재력이 아직 터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격수가 보여야할 본능적인 야수성과 순발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퍼스트 터치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능력, 밀집 지역에서의 투쟁심 등이 부족해 보입니다. 좋게 말하면 축구를 예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자신감도 보이는데, 자심감 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 하는 것 같고요. 공을 잡았을 때 생각도 많은 것 같고요.
저는 최병찬이 공격 때 생길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본능보다는 이성이 지배하는 선수 같습니다. 하지만 공격수는 생각보다 발이 먼저 나가야할 때가 많은 것 같고요. 그런 무의식적인 공격 작업은 오직 특정 상황 반복 연습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부분은 좋기 때문에 이게 채워지면 지금 상태 이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 이 성가신 새끼들 뭐야.. 나 최병찬이야.. 비켜.. 나 골 넣어야 돼" 이런 말을 내뱉는 것으로 보이는 투쟁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2022년 수원삼성의 오현규가 안양과 플옵 연장 후반에 골을 넣을 때 플레이같은 모습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이때 보면 오현규는 "비켜.. 나 이거 넣어야 돼.. 아 좀 비켜봐.. 나 이거 넣을꺼야" 결국 상의탈의하고 팀을 살려 내고 외국 나갔습니다. 당시 중계진은 "경기내내 고립되면서 힘든 상황이지만 경기 내내 싸워줬거든요!!...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싸워 낸 것이 결국은... 이 골은 간절함과 절실함에서 왔다"고 했는데,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플레이가 최병찬 선수에게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을 예쁘게 찰 생각하지 말고 이제 축구 선수로서 승부를 걸 나이에 뭐 하나 걸겠다는 결기를 보이면서 골에 집착했으면 합니다. 여러모로 여기서 만족할 수 없는 최고 유망주였던 최병찬 선수가 이렇게 30살을 맞을 수는 없죠.
선수들을 한명씩 보다보니 조금 정도 붙고, 경기장에서 보면 더 눈길이 가기도 합니다. 결국 예전과 같은 팀에 대한 설레임을 가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